예수님의 성탄을 통해 예수님의 겸손한 성품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구유 위에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예수님이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탄생 장소는 높은 곳이 아닙니다. 화려한 곳이 아닙니다. 안락한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탄생 장소는 지극히 낮은 곳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통해 배우는 예수님의 성품은 겸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구유 위에 태어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겸손한 성품을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선택한 보좌는 구유였습니다. A. W. 토저는 “구유는 단순한 요람이 아니라 겸손의 보좌였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겸손은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참된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는 선택에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거나 교만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겸손과 교만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는 길입니다.
첫 번째 아담의 죄는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옛 뱀이 그를 유혹한 것은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싶은 교만한 마음을 부추긴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교만은 멸망의 선봉입니다.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첫 번째 아담의 교만은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반면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겸손은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낮은 데로 임하셨을까요? 왜 우리에게 낮은 데로 임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낮은 곳에 임하신 까닭은 낮은 곳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곳은 위험합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은 오래 머물수 없습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은 매우 춥습니다. 산소가 희박합니다. 오래 머뭇거리면 죽습니다. 높은 정상은 위험한 곳입니다. 높은 정상은 머물기 위해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기 위해 정복하는 것입니다.
높은 곳이 위험한 까닭은 높은 곳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순간부터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높은 곳에 오를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자신을 감출 줄 알아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자신을 감추는 삶의 기술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겸손의 덕을 겸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립니다. 스스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하든 끌어내려 오는 길을 선택하든 결국은 내려오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높은 위치에 서는 사람은 다니엘처럼 바짝 엎드려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단 6:10).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날개 그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시 17:8, 36:7).
높은 곳이 위험한 반면에 낮은 곳은 안전합니다. 가장 낮은 곳은 더 이상 내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곳은 가장 안전합니다. 가장 낮은 곳에 평강이 넘칩니다. 낮은 곳을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평강이 넘칩니다. 낮은 곳을 행복으로 선택한 사람은 날마다 행복합니다. 인간의 행복은 자족에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을 아무도 불행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행복합니다(빌 4:11-12).
예수님이 낮은 곳에 임하신 까닭은 비천한 우리를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시기 위해서입니다(엡 2:6). 팀 켈러는 “구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높은 곳으로 들어올리시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표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님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낮은 자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오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겸손의 덕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이유는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을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하-6).
예수님은 구유를 성탄의 장소로 선택하심으로 가장 작은 것 속에 담긴 위대함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작고 평범한 것 속에 위대함의 씨앗을 담아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작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하찮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존귀히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사람이 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요 1:12-13).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 받아 겸손한 성품으로 섬기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복된 성탄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