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협이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교계 원로 되는 지도자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최근에 종종 듣고 있는 소리다. LA 지역 교계의 형편을 아는 평신도 지도자들의 볼멘 목소리들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있는 마음이 편치 않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한다. 현재 이 지역에 교협이 셋이란다.
이 땅의 이민 현장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기 이민사회의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은 교계였고 교계가 새롭게 형성되는 이민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최초 이민자 102명 가운데 내리 감리교회 교인들이 절반가량 되었고 그들 가운데는 리드쉽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척박한 여건에서 노동자로 생활하고 있던 그들에게 교회는 안식처가 되고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관이었다.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도 교회가 주도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가 커뮤니티를 리드해 나갔고, 이민 사회는 교회의 리드에 순종하고 참조해 나가고 있었다. 조국이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에 땅을 치며 통곡했던 곳도 교회였다. 그래서 교회가 중심이 되어 독립 기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보내는 일도 도맡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교계의 리더쉽은 약화되고 시들해지게 된 것니다.
1960년도 후반에 케네디 이민법이 개정된 이후 이민 문호가 열리게 되자 한인들의 이민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민자들을 위한 한인교회가 곳곳에 세워지게 된다. 세워지고 있는 교회들의 단합과 결속을 위해 1969년도에 남가주 지역에 남가주 한인 기독교 협의회가 구성이 되고 반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그 사명을 감당하며 교계를 연합하는 구심권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 남가주 교협이 셋으로 나누어졌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제 55회 총회를 열고 각 그룹마다 회장과 수석부회장을 선임하고 있다고 언론에 보도한다. 평신도들은 어느 교협이 진짜 교협인지 헷갈리고 있다. 그래서 교협이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볼멘 불평을 늘어 놓는 것이다.
지금 미주 안에 있는 한인 이민자들의 70%가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데 교계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교협이 이런 식으로 중구난방이 되고 있으니 평신도들이 어떤 눈으로 교협을 바라보고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어떤 언론기관에서는 교협의 기사를 다루지 않기로 내부적인 결정을 했다고 한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가? 목회자들은 이 커뮤니티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고 기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다. 그런 지도자들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언론이 기피하는 기관이 되고 있다면 그 리더쉽이 세워질 수 있겠는가?
교협은 정부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야할 때는 목소리를 내고 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오피니언 리더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할 기관이다. 교협의 신뢰성 회복이 급선무다. 신뢰성을 다시 회복하려면 교협 대표들이 먼저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가 되기 위해 의논해야 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자기주장만 늘어놓는다면 연합은 요원하다. 은퇴한 원로목사의 한사람으로 그들이 원한다면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 교협은 성탄절을 맞기 전에 먼저 하나 되는 교계의 구유 역할을 감당하여 오실 아기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포근한 기관이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