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회에 이어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를 분석합니다. 이 드라마에는 악마 판사 '강빛나(박신혜)'를 비롯해 경찰 한다온(김재영), 구만도(김인권), 이아룡(김아영), 오미자(김영옥), 정재걸(김홍파), 정태규(이규한), 장명숙(김재화), 김소영(김혜화), 박동훈(김지훈), 고은섭(박지훈), 정선호(최동구), 김재현(이중옥), 문동주(하경민), 안대용(김광규) 등이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친근한 기독교인: 코미디 소재 취급 받는 기독교인 신앙생활
작중 권사, 전형적 교회 신자
묘사 방식, 진지함 결여 심각
희화화에만 치우친 점 아쉬워
<할렐루야> 이래 반복된 묘사
<지옥에서 온 판사>가 최근 국내 드라마 인기 순위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2주 전 시대극 <정년이> 방영 전까지 국내 드라마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정년이>에게 1위 자리를 내준 현재도 굳건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청자들의 평가를 보면 일부 설정상 오류와 극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는 코믹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초월적 힘을 사용해 악랄한 범죄자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하는 통쾌한 피카레스크적 서사 덕분에 준수한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지옥에서 온 판사>의 줄거리는 불교, 한국 민속신앙, 무속, 로마 신화, 기독교 교리, 유럽 근대 오컬티즘을 혼합한 내세 서사다. 당연하게도 작중 기독교 교리와 세계관으로부터 차용한 설정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설정들의 정확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다. 영적 세계에 대한 여러 이질적 이해 방식을 이리저리 뒤섞어 놓은 터라 당연히 교리적으로도, 그리고 서사 설정상으로도 허점이 많다.
이 작품은 6화까지 교회와 교인들을 우호적으로, 친근하게 묘사한다. 작중 교회 권사로 등장하는 장명숙(김재화 분)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도에 열심을 내고 선의로 사람들을 대하는 전형적인 교회 신자다. 전도 방식이 약간은 강압적이라 주변인들에게 다소간 심적 부담을 주는 모습까지도 전형적이다.
일단 9화까지 장명숙이라는 인물에 대한 친밀감 어린 관점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이 작품이 기독교인 캐릭터와 교회를 묘사하는 방식에는 심각할 정도로 진지함이 결여돼 있다. 이는 장명숙의 약간은 가벼워 보이는 언행들을 통해 확인된다. 그리고 교회 예배 장면에서 졸개 악마 구만도(김인권 분)가 목회자의 "사단아 물러가라"(마 4:10)는 봉독 말씀에 뒤로 넘어지는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위해 선의로 타인을 대한다는 점, 그리고 교회가 마귀와 그 수하들에게 특별한 영적 권능을 발휘한다는 점을 묘사한 데 대해서는 별다른 유감이 없다. 그러나 그 연출 방식이 지나치게 희화화에 치우쳐 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이는 영화 <할렐루야>로부터 시작해 국내 대중문화계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된 잘못된 기독교인 묘사 방식 가운데 하나다.
작중 신앙에 열심을 가진 기독교인을 코미디 캐릭터로 일반화하는 묘사, 그리고 교회가 영적 권능을 발휘하는 방식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슬랩스틱(과장된 동작과 신체적 표현을 동원하는 코미디 기법)은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친근감을 심어주는 것을 넘어, 기독교 신앙을 시답지 않은 믿음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기독교 신앙은 성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 그리고 모범적인 교회들의 모습에 의거해 농담, 기롱하는 말, 그리고 실없는 유머나 코미디를 지양한다.
교인들이 서로에 대해서나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한 주변인들에게 온유하고 신실한 태도를 보인다고 할 때, 이것을 대부분의 교회에서 유머러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오해하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오해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 드라마 각본가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위선적인 기독교인: <밀양>, <더 글로리>, 그리고 <지옥에서 온 판사>까지
교리 몰이해, 희화화보다 심각
대중문화 속 왜곡된 인식 전형
최원중, <밀양> 살인자와 닮아
주님께'만' 회개, 극단 구원론
종교적 위선 불가피한 일부분?
회개 진정성 결여 성도들 문제
위선이 본질인 양 자극적 묘사
급급한 대중문화도 책임 있어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온 판사>는 교회와 기독교인 희화화에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심각한 기독교 구원 교리에 대한 오해를 보여준다. 이는 8화에 등장하는 악인의 대사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이 대목에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속 기독교 신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전형을 재현한다.
영화 <밀양> 이래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묘사된 파렴치한 기독교인의 전형이 8화에 등장하는데, 특권의식에 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가학적 성격까지 가진 살인자 CEO 최원중(오의식 분)이 바로 그런 유형의 인물이다.
최원중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혹한 노동 환경을 방치해서 여러 명의 직원들이 산업재해로 죽도록 내버려둔 악덕 기업가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노조위원장 원창선(강신일 분)을 폭행하고 살해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스로를 모범적인 기업인이자 기독교인으로 여긴다.
작중 최원중은 노조위원장을 폭행하고 살해한 일로 재판에 회부된 다음, 검찰과 법원에 청탁을 넣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풀려난 직후 그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의 대사는 세간에서 바라보는 위선적 기독교인의 전형이다.
"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늘 제 편이 되시고 늘 저와 함께 하시어 남들보다 풍요로운 삶, 건강한 삶, 축복된 삶 살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최원중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가증한 기독교인에 대한 분노를 자아낸다.
특권의식에 찌들었을 뿐 아니라 가학적 성격까지 가진 살인자 CEO 최원중(오의식 분)은 영화 <밀양> 이래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묘사된, 파렴치한 기독교인의 전형이다.
▲특권의식에 찌들었을 뿐 아니라 가학적 성격까지 가진 살인자 CEO 최원중(오의식 분)은 영화 <밀양> 이래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묘사된, 파렴치한 기독교인의 전형이다.
또 주인공 강빛나 판사(박신혜 분)가 최원중에게 지옥 형벌을 내리러 온 장면에서 최원중이 내뱉는 말 또한 참담하다. 강빛나가 최원중에게 "사람 죽인 거 반성은 하니? 용서는 받았고?"라고 묻자 그는 "제가 교회 가서 회개했고요, 교회 가서 '죄송합니다' (기도했어요). 주님께 용서받았어요"라고 답한다.
이에 강빛나는 "그거 말고, 피해자한테 사과하고 용서받았냐고?"라고 묻자 최원중은 "예? 저는 이미 신께 구원받았는데요?"라고 대답한다. 기독교 신앙을 죄를 지어도 되는 면죄부, 구원의 특권으로 여기는 이런 비틀린 신념은 영화 <밀양>에서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바 있고, 그 뒤로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됐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주님께'만' 회개하면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 피해자와 사회에 대한 죄책과 책임은 철저히 부정하는 이런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은 극단적 칼빈주의(hyper-Calvinism)의 대표적 양태로 볼 수 있다. 극단적 칼빈주의란 18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칼빈 신학의 한 지류로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던 일련의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존 스켑(John Skepp), 존 브라인(John Brine), 존 길(John Gill) 등에 의해 주창된 이 이론은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강화하여 구원과 유기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내세운다. 이 이론이 확장되면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행, 그리고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마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결정돼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신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부정과 불법적 행위, 그리고 범죄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된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강화해 구원과 유기에 있어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내세운다. 작중 최원중은 이 잘못된 신학사상을 따르는 이들의 행동방식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강화하여 구원과 유기에 있어 인간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내세운다. 작중 최원중은 이 잘못된 신학사상을 따르는 이들의 행동방식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18세기 내내 영국 기독교계에 궤멸적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이들이 죄를 짓고도 전혀 회개할 마음이 없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교회를 등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일은 비록 그 정도나 빈도는 덜할지 몰라도, 거의 같은 양상으로 한국교회에서 재현되고 있다.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도 한국교회의 이 어긋난 구원이해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단언하건대 타인에게 범죄한 자는 당연히 하나님께 회개를 해야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절박한 심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이런 책임은 성경에서도 명시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눅 17:4)".
이 가르침은 논리적 형식을 따질 때 명백한 조건문이다. 전건(antecedent)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이며 후건(consequent)은 "너는 용서하라"다. 전건이 긍정되어야, 즉 전건이 참이어야 후건도 긍정된다. 여기서 "내가 회개하노라"라는 말의 엄중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 전체를 다해 참회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렇게 피해자에 대한 막대하고 압도적인 죄책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가진 회개여야,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것이다.
<밀양>의 유괴살해범 박도섭(조영진 분)으로부터 <더 글로리>의 학폭 가해자이자 마약 중독자 이사라(김히어라 분)를 거쳐 <지옥에서 온 판사>의 소시오패스 살인자 최원중까지, 우리 대중문화는 그동안 위선적 기독교인, 거짓된 기독교인의 정형을 통렬하게 비판해 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이 위선적 행태가 마치 한국 개신교 신앙의 떼어놓을 수 없는 일면인 것처럼 소개하여,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켰다. 종교적 위선은 신앙의 불가피한 부산물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죄악이자 장애물이다.
▲<밀양>에서 아들을 살해한 위선적 기독교인의 말에 무너져내린 이신애(전도연 분). <밀양>, <더 글로리>, 그리고 <지옥에서 온 판사>는 이런 위선적 행태가 마치 한국 개신교 신앙의 떼어놓을 수 없는 일면인 것처럼 소개함으로써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켰다.
종교적 위선이 마치 한국 개신교 신앙의 불가피한 일부분인 양 표현하는 행태에는 회개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는 외식하는 기독교인들의 잘못도 있고, 그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그 위선적 측면을 한국 개신교 신앙 본연의 특성인 양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데 급급했던 대중문화 서사 작가들의 책임도 있다.
결국 작중 강빛나가 최원중의 이마에 '게헨나(왕하 23:10, 히브리어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는 뜻, 이스라엘의 몰렉 숭배자들이 아이들을 불에 태워 죽이는 인신공양을 저지른 곳, 신약 시대에 '지옥'으로 해석됨)'라는 말이 새겨진 화인(火印)을 찍는 것은, 성경적인 회개의 의미를 유념할 때 적절한 형벌로 여겨진다. 최원중은 하나님께 가납(嘉納)될 만한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한 적이 없다.
여기서 강빛나가 지옥에 떨어질 죄인들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 행위 역시 기독교적 소재(계 7:3, 이마에 인을 맞음)인데, 동양에도 이마에 먹자를 뜨는 형벌이 있어 작중 두 소재를 혼합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마에 새기는 인은 원래 성경에서 구원을 얻는 성도들이 받는 표다. 그러나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는 이런 의미가 뒤집혀 지옥에 떨어질 이들에게 찍는 낙인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점도 기독교적 시각으로는 불편해 보이는 설정이다.
요약하자면 <지옥에서 온 판사>는 친근한 기독교인과 위선적 기독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되, 전자에 대해서는 일방적 희화화의 방식으로 접근하며 후자에 대해서는 기독교 구원 교리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에 기인한 잘못된 표현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이런 표현 방식이 비록 기독교 구원론과 회개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도, 실제 위선적 기독교인들이 현실에서 보여주는 사고 및 행동 양식은 드라마 속 표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가 진정성 없는 거짓 회개의 행태를 방임하는 한,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이런 비판적 표현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 회개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믿음에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친근한 기독교인과 위선적 기독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되, 전자에 대해서는 일방적 희화화의 방식으로 접근하며 후자에 대해서는 기독교 구원교리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에 기인한 잘못된 표현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