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1일부터 25일까지 2주간을 '추석 연휴 비상 응급 주간'으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당직 의료기관을 지정해 연휴 기간에 국민의 의료 이용에 차질 없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추석 연휴 전후 한시적으로 진찰료, 조제료 등 건강보험 수가를 대폭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눈길을 끄는 건 중증 응급환자를 책임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 진찰료 인상이다. 평소보다 3.5배 수준으로 올린다는 내용인데 "의료인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추석 연휴를 '비상 응급 주간'으로 정하고 이에 비대한 각종 방안을 내놓은 배경은 응급의료 차질에서 오는 비상사태를 막기 위한 선행적 조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된 현실에서 명절 연휴 기간에 위급 환자가 응급실을 뺑뺑이 돌다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뜻이다. 

정부 조사에 의하면 명절 연휴 기간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평상시에 비해 1.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설 연휴에도 이와 비슷했다는 점에서 이번 추석 연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비상체제로 메우고 있는 응급실에 한꺼번에 많은 환자가 밀어닥치는 상황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경증환자는 응급실이 아닌 당직 병·의원을 이용해 달라는 캠페인에 나선 것도 의료 편중·적체 현상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계절은 이미 가을에 접어들었는데 9월 중순이 되도록 무더위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오미크론 KP.3'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이 우려된다. 최근에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면역 회피력이 높아 언제든 코로나19 유행 확산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대부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해열제를 먹고 며칠 쉬면 증상이 호전된다. 계절 독감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증상이 약하다는 게 앓아본 경험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그런데도 증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중증 환자가 8월까지 1천8백명을 넘었다고 한다. 입원 환자가 5주 만에 15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건 예사로 여길 일이 아니다. 

방역 당국은 9월에 들어서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점차 감소할 거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만 환절기에 감기와 유행성 독감 등과 겹쳐 다시 확산 유행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따라서 명절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마스크를 쓰거나 아예 모임 자리를 피하는 게 가장 좋은 예방책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건강한 성인이라면 크게 염려할 수준이 아니다. 열과 기침 등 외부에 드러나는 증상이 계절성 호흡기 질환과 크게 다르지 않은 특징이 있다. 하지만 다른 질환이 있거나 나이가 많은 고위험군에겐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을 비상 응급 주간으로 선포한 건 단지 코로나19 대유행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7개월을 넘기면서 병원마다 응급실이 마비되는 어두운 현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병원 응급실은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를 전문의들과 간호사들이 메우며 겨우 버티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마저도 탈진하거나 못 견디겠다고 사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의료 공백 장기화의 짐이 국민에게 전가될 일만 남은 셈이다. 

어쩔 수 없어서 응급실 문을 닫는 병원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추석 연휴 한시적 응급 조치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발표한 한시적인 응급 수가 대폭 인상이 병원 운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런다고 병원을 떠난 의사들을 돌아오게 만들진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야 정치권, 의사단체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어렵게 '여·야·의·정 협의체'를 출범하기로 한 건 가뭄 끝에 한줄기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쟁점인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오락가락하고 의료계도 당장 2025학년도 증원 백지화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어 협의체가 출범도 하기 전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런 예민한 때에 의사와 의대생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국민을 '개돼지'로 폄하하는가 하면 "응급실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 없다"는 등의 글이 난무하는 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직면한 초유의 의료 공백 사태는 거시적 관점에서 국민에게 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의 의료개혁 단행에 의료계가 집단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한 치의 양보나 타협도 없이 줄다리기 싸움을 하는 동안 그 모든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경증 환자는 동네 의원에서도 충분히 진료가 가능하니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약국에서 약 사 먹고 집에서 간단한 처지로 끝날 사람이라면 병원 응급실에 가는 일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병원 응급실에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정부가 연휴 기간 응급실 대란 사태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국민에게는 '응급실 갈 일 없도록 각자 몸조심 하라'는 말로 들리는 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