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시리즈, 창조-종말-영생
나름 체계적 스토리로 '신화' 구축해
창세기와 계시록 뒤튼 SF 신화 창조
외계인 서사에서 답 찾는 미국 사회
단순 오락거리에서, 기독교 대체할
새 종교적·과학적·문화적 가설 호응

영화 속의 외계인: 미국 사회의 기독교적 세계관 붕괴와 정신적 공황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시작된 <에이리언> 시리즈의 7번째 작품으로, <에이리언> 1편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의 이야기를 전한다.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폐쇄된 공간에 여러 무방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페이스 허거와 제노모프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을 소름돋게 묘사했다. <에이리언> 1편과 2편의 결말을 합쳐놓은 것처럼 주인공 여전사 레인(케일리 스패니 분)과 망가진 AI 합성인간 앤디(데이비드 존슨 분)만이 살아남아 위기를 탈출한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전의 모든 <에이리언> 시리즈와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설정과 서사를 모두 조화롭게 녹여내면서 <에이리언> 팬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에이리언> 3편과 4편, 그리고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사실 관객과 평론가 양측 모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전 모든 시리즈 내용을 훌륭하게 이어받아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있다. 

작품의 재미와 서사 측면으로만 따지면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수작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에이리언> 시리즈의 명맥을 끝까지 살려내려는 할리우드의 노력은 미국 대중문화계, 더 나아가 미국 사회의 정서적 공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 다소 안타까움이 든다.

미국 사회는 인간의 기원과 존재 목적, 그리고 인류의 장래 운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한 전망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불안에 빠져 있다.

미국의 역사, 문화사가 여타 국가에 비해 결코 오래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을 건국한 식민지 이주민들은 선조인 영국의 문화사적 유산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적절하게 운영해 매우 빠르게 나라를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시켰다. 미국의 이런 발전적 정치사·문화사의 중추에는 기독교 세계관과 인간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기독교적으로 선하고 윤리적인 궤적만 남긴 것은 아니다. 백인 외 인종에 대한 지독한 인종차별과 원주민 학살, 그리고 제국주의적 세력팽창 과정 중 자행한 각종 전쟁범죄와 수탈행위로 점철돼 있는 것이 미국 역사의 실상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일부 신실한 미국인들은 신 앞에서의 평등, 만민에 대한 복음 전파, 무지와 인습 타파라는 기독교적 책무를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이런 선의에 찬 기독교 문화전통이 미국을 기존의 다른 제국주의 열강 및 패권국들과 구별해주는 표지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근래 미국 사회는 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 이해에 밑바탕을 둔 문화사적 유산을 전부 내다버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진보적 정치관, 다양성을 우상화하는 실험적 윤리관, 이성과 책임보다 감정과 권리에 치중한 삶의 자세가 청교도적 삶의 기준들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한 행사에서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자리한 모습. 기독교 세계관과 인간 이해를 배척하는 미국 민주당의 문화적 성향을 대표하는 두 대통령, 오바마와 바이든. 오른쪽은 클린턴. ⓒ페이스북
▲지난 4월 한 행사에서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자리한 모습. 기독교 세계관과 인간 이해를 배척하는 미국 민주당의 문화적 성향을 대표하는 두 대통령, 오바마와 바이든. 오른쪽은 클린턴. ⓒ페이스북

영화 속의 창조주: 성경의 창조론과 종말론을 비튼 SF 신화의 등장 

이런 실험적 풍조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다수의 미국 대중은 현재 미국 실상을 인류의 진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 서구 인권, 평등, 복지 개념을 정립한 기독교 윤리의 껍데기만 이어받은 채, 그 정신적 기반은 제거해버리는 파괴적 해체에 불과하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이런 파괴적 해체를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대중문화 현상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에이리언> 시리즈 줄거리는 단순히 우주 괴물들과 싸우는 SF 서사가 아니다. 이 시리즈는 인류의 기원, 외계인의 존재와 그들의 역할, AI와 인류의 공존, 그리고 우주로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지구의 멸망을 극복한 인류의 종말론적 미래 같은 논제들을 건드리는 서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에이리언> 시리즈는 미국 학계에서 신학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져주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중심논제로 삼는 철학 연구논문집, 『Alien and Philosophy: I Infest, Therefore I Am』이 출판된 적도 있다.

<에이리언> 시리즈가 처음부터 이렇게 복잡한 서사와 설정을 담아냈던 작품은 아니다. 적어도 프리퀄 1편인 <프로메테우스> 이전까지 원래 <에이리언> 시퀄 시리즈는 정체불명의 우주괴물과 싸우면서 인간과 AI의 존재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정도의 SF 작품이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서 인류를 창조한 엔지니어 즉 스페이스 자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부터, 이 시리즈 전체의 서사 진행 방향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에이리언> 시리즈는 인류가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외계종족에 의해 창조됐고, 그 창조주들이 피조물인 인류의 종말을 위한 도구로 제노모프를 선택했다는 신화적 세계관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이렇듯 창조, 종말, 영생에 대한 나름의 체계적 이야기를 구축한 <에이리언> 시리즈는 한 편의 신화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다. 선사 시대에 생겨난 세계 각지 신화들도 이런 식의 '개연성 있는' 상상력을 통해 창작됐을 테니, <에이리언> 시리즈도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신화체계라고 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 속 인류 창조 이야기를 기점으로, <에이리언> 시리즈는 하나의 신화 체계로 변모한다.
▲<프로메테우스> 속 인류 창조 이야기를 기점으로, <에이리언> 시리즈는 하나의 신화 체계로 변모한다.

<에이리언> 신화 속에서 창조주 즉 신 역할은 엔지니어가 맡고 있고, 인류를 괴롭히는 대적자, 마귀, 혹은 '짐승(계 13:1)' 역할은 페이스 허거와 제노모프가 맡고 있다. 그리고 전 우주적 거대 기업인 웨이랜드 유타니 사(社)와 이 회사가 제작한 AI 로봇들은 짐승들에게 매혹돼 그들을 섬기는 세력들로 등장하고, 인류는 이 악의 세력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며 고통받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기묘하게 뒤튼 이 SF 신화는 기존 미국 사회의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대체하려는 문화적 동기를 반영한다.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통해 전해진 창조주와 천사와 인간과 구원과 종말의 진리를 내다버리고 있는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에이리언> 같은 유형의 과학주의적 서사는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준다.

<에이리언> 시리즈만 본다면 단순한 오락거리,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미국 사회에는 외계인을 창조주나 인류 진화의 조력자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이언톨로지'처럼 외계인이 인류의 기원이라고 가르치는 거대 종교도 존재하고, 로스웰 UFO 추락 음모론을 사실처럼 여기거나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미국 사회에서는 원래 기독교 창조론을 보완하려는 의도로 창안된 유사과학인 지적 설계론을, 초월적 외계지성체나 외계종족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용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 외계인 관련 사이비 종교나 유사과학 혹은 음모론은 순전한 흥밋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는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우주 괴물 페이스 허거와 제노모프를 통해 기독교 창조론과 종말론을 기묘하게 비튼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우주 괴물 페이스 허거와 제노모프를 통해 기독교 창조론과 종말론을 기묘하게 비튼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원래 기독교 문화를 밑바탕 삼아 발전을 이룩했기에, 기독교적 세계관과 유사하면서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적·과학적 혹은 문화적 가설이나 상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새로운 신화들은 많은 미국인들이 비기독교적인 정체성과 삶의 태도를 정립하는 데 제법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