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C.T 스터드(C. T. Studd)라는 분이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출신에다가 귀족 가문으로 큰 부자였고, 크리켓 영국 대표선수이자 성적도 우수한 장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출세의 길이 보장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D. L. 무디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라는 부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담감이었기에 마침내 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서려는 그의 결심을 들은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학교 당국자들이 나서서 그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빛낼 탁월한 재능을 가진 유망주가 자기 한 몸 희생하는 선교사로 가려 하니 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여보게, 이건 자네에게 너무 지나친 희생이 아닌가? 다시 한 번 재고해 보게!"
이때 스터드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그 어떤 희생도 지나친 것일 수 없습니다."
스터드의 말을 곱씹어 보면,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그 엄청난 희생과 비교해보면 인간의 어떤 희생도 지나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게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목회를 하든 전도를 하든 무엇을 하든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서 목회하는 후배가 지난주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목회할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힘든 자리예요."
긴 세월 강의만 하다 보니 솔직히 한 교회에서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변화시켜 행복한 목회의 현장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수년 전, 목회로 뛰어들려는 내게 한 친구 목사가 이렇게 조언했다. "제가 행복하게 목회할 것 같아 보이세요? 절대 아닙니다. 죽다 못해 합니다. 저는 교수님이 부럽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 길로 오지 마세요!"
이름만 대면 누구나가 다 아는, 우리나라 교계에서 최고로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는 목사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무려 18분간이나 담임 목회로 뛰어들려는 나를 뜯어말린 적이 있다. 하기야 스트레스 받는 걸로 치면 목회보다는 교수의 자리가 더 편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교수직도 알고 보면 놀고먹는 직업은 아니지 않는가. 늘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고, 소논문 두 편을 매학기마다 써서 학술지에 실어야 하는 등 쉬운 일은 없다.
세상에 만만한 일자리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의 사명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여전히 부럽고 아쉽다. 신학의 꽃은 목회 현장이기 때문이다. 목회 현장에서 내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맘껏 발휘해보지 못한 채 강의만 하다가 인생을 마치기에는 내 속에 올라오는 걷잡을 수 없는 불을 주체할 수가 없다. 강의보다는 설교가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준다는 사실을 경험상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세상에 쉬운 자리나 편한 직업은 없다. 선교사나 목사들 중 그 성직 말고 다른 일을 했으면 더 잘 했을 사람도 적지 않다.
내가 집필한 극동방송의 『김장환 목사 평전』(미래사, 2024)이 출간됐다. 김 목사와 대면 인터뷰를 여러 차례 했고, 그분이 정해준 60명에 가까운 지인들과 인터뷰 하느라 2년이나 걸렸다. 김장환 목사에 대해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평가한 내용이 하나 있다.
반기문 전 UN 총장과의 인터뷰 내용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죄송하지만, 김장환 목사님은 목사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분이에요. 세계의 대통령을 하면 딱 적격일 정도로 인맥이 넓고 인품이 좋고 구변이 탁월하고 리더십이 있는 대단한 분이세요." 맞다. 이제는 '김장환 목사 자신보다 그를 더 잘 아는 나'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2년여 동안 극동방송과 김장환 목사를 연구하고 탐구해온 나이다.
그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 솔직히 김장환 목사는 반 전 총장의 말마따나 목사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타고난 재능과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와 절친이었던 조용기 목사의 조언대로 서울에서 목회했으면 훨씬 더 큰 교회를 이룰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유학 가서 예수님을 만난 후 한국, 그것도 자기 고향 수원을 향한 사명을 품었다. 미국에 남았으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는 자기 고향 수원을 지켰던 사람이다.
사업을 했어도 정치를 했어도 무얼 했어도 김 목사는 크게 잘했을 사람이라고 인터뷰한 지인들 모두가 아쉬운 마음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나 역시 그가 다시 40대로 다시 돌아가 세계의 대통령이 되어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을 정도로 그는 출중한 인물이 틀림없다. 어찌 보면 바보 같고 낭비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비하면 초라해지고 만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나를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그토록 험악한 십자가를 지고 심판받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저 감사 밖에는 터져 나올 게 없다.
하나님 나라와 주를 향한 사명에 쉬운 길은 없다. 힘들고 어려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겠지만, 나를 위한 그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모두 주를 위해 힘차게 뛰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