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정신(Puritanism)과 신앙의 전수
청교도들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다.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주한 청교도들은 종교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예배와 신앙생활에서 인간의 전통과 형식주의를 배격했다. 청교도들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생활 태도는 미국 사회의 기본적인 도덕적 기준을 형성했으며, 노동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보았고, 성실하고 근면한 생활을 중요시했다.
이들은 성경을 통해 바른 신앙을 유지하고 그들의 자손들에게도 바른 신앙을 전수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교회와 학교를 먼저 세웠다.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학교에서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쳤다. 이는 미국의 교육 제도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버드 대학과 프리스턴 대학이 청교도에 의해 설립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모두 신학교부터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창기 신실한 청교도들의 이주에 이어 많은 이주민이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왔다. 이들은 여러 가지 유럽의 신문물과 철학과 신학 사조를 미국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영국으로부터 진화론이, 독일로부터 고등비평의 유입이 청교도 신앙을 잠식해 들어왔다.
19세기 미국의 보수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갈등
19세기 미국의 신학 사조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와 함께 다양하게 발전했다. 한마디로 격변의 시대였다. 이 시기 미국은 서부 개척, 산업 혁명, 노예제도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도전에 직면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종교와 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복음주의 운동(Evangelical Movement)은 18세기 대각성 운동의 영향을 받아 19세기에도 개인의 회심과 구원을 강조했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가 주요 인물이다. 개인의 구원, 회심의 중요성, 성경의 권위, 사회 개혁(특히 금주 운동과 노예제 폐지)에 중점을 두었다. 부흥 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이끌었으며, 사회 개혁 운동과 깊이 연계돼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신학 사조 역시 계몽주의 철학 사조를 타고 등장한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이 미국에도 일어났다. 성경 비평을 받아들여 성경을 역사적·비평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성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교리와 신앙 해석을 부인했다.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에서 힘을 얻은 것은 독일에서 시작된 성경 비평학이 미국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 유니온 신학교의 찰스 브릭스(Charles Briggs)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그는 독일에서 고등비평을 배워 온다. 성경 텍스트의 기원과 성경의 저자와 역사적 배경 등을 문학적,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비평적 방법론을 미국 신학계에 전파한다.
그는 성경의 원문에 오류가 있으며, 구약의 메시아적 예언이 성취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모세 5경의 저자가 모세가 아니며, 이사야서의 저자도 이사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한 유니언 신학교의 일부 교수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브릭스는 목사직에서 면직이 되고 성공회로 소속을 옮긴다.
복음주의 입장에서 자유주의 신학으로 변질된 대표적인 곳이 1746년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프린스턴 신학교다. 미국 북장로교의 대표적인 신학교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복음주의 신학파와 자유주의 신학파의 대표적인 교리 충돌이 1924년에 있었던 어번 선언(the Auburn Affirmation)이다. 1910년 북장로교 교단이 정한 5가지 교리(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기적들의 사실성)를 부인한 것이다. 어번 선언서는 이 교리들을 "성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본질적이지 않고 단지 이론들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특히 성경 무오의 교리는 성경 숭배에 빠지기 쉬운 교리라고 비난했다. 어긋난 성경관을 주장하던 진영은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복음주의 신학 진영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고 교묘하게 배척했다.
북장로교의 이런 흐름은 한국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박윤선, 박형룡 같은 신학자는 프린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로 물들기 전에 수학을 하고 귀국하여 한국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터를 닦았다. 한편 프린스턴 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이후 자유주의 신학 사조를 배우고 귀국한 김재준 등은 한국에 자유주의 신학을 전하게 된다. 보수주의 신학 사조와 자유주의 신학 사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경관이 다르다는 점이다.
북장로교(PCUSA)의 자유주의 신학 사조는 결국 복음의 순수성을 저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방향을 향한다. 그 결과 1929년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을 지적한 메이천 목사를 선교사역에 대한 문제를 빌미 삼아 면직을 시킨다. 실은 자유주의 신학사조에 반대하는 메이쳔을 제거한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을 이어간 미국 북장로교는 2011년 동성애자 목사, 장로, 안수집사를 허용하는 배도적 결정을 하게 된다.
침례교 역시 1960년 말과 1970년대 초에 자유주의 신학이 스며들어 왔다. 그 당시 신학교 교수와 총회장과 많은 임원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옹호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0년대 초 엘리어트 논쟁이다. 엘리어트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를 상징으로 보고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했다. 진화론과 함께 인본주의에 편승한 변질된 성경관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성경관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결국 생명윤리 기준을 바꾸는 일까지 벌어졌다.
1973년 미국 연방법원이 낙태를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그 결과 임신 3분기중 2분기까지 낙태가 허용되었고, 2022년 돕스 판결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무효화 되기까지 49년간 약 6,300만 명의 생명이 죽어갔다. 1973년 로 대 웨이드 낙태 허용 판결이 났을 때 당시 총회장은 이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을 정도다.
다행히 보수주의 입장에 서있던 아드리안 로져 목사가 침례교 총회장이 되면서 신학교와 총회 임원중에서 자유주의 신학에 찬성하는 교수와 임원들을 밀어내고 침례교의 보수주의 신학을 회복하게 된다. 2022년 돕스 판결이 나오는 데는 일명 바이블 벨트로 알려진 남침례교 우세 지역의 강력한 신앙 운동이 큰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각 주마다 생명 보호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20세기 초에 개혁주의 신학( Reformed theology)이 자유주의 신학과 고등 비평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다. 이들은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적 권위를 믿으며, 전통적인 교리를 고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부활 등의 교리를 내세운다.
자유주의 신학파들이 주장한 어번 선언에 대해 메이천(J. Gresham Machen), 알리스(Allis), 윌슨(Wilson), 반 틸(Van Til) 등 보수적 교수들은 학교 안에 스며든 자유주의 신학 사조를 경계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메이천과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는 교수들은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나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우게 된다.
성윤리와 생명윤리를 무너뜨린 성경관의 차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준을 윤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준을 성경을 통해 분명히 알려주고 계신다. 성경을 성경에 쓰여진 대로 믿지 않게 되면 상대주의 윤리관과 유물론적 사고를 받아들이게 된다.
상대주의 윤리관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의 편의와 쾌락, 행복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여긴다. 유물론적 사고로 인간을 물질(materials)로 보게 되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생명의 소중함이 당연히 훼손되어 버린다. 인간을 단순한 세포 덩어리나 유전자 덩어리로 바라보게 된다. 인간은 하등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추락해 버린다. 생명윤리가 미끄러운 경사길에 올라타고 연속적으로 훼손되어 버린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성경관의 차이가 성윤리과 생명윤리를 후퇴 시켜왔다. 성경관의 차이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청교도 신앙으로 건국하여 열방에 복음을 전하던 미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철학에 침식되어 갔다. 미국의 신학 사조가 자유주의 신학에 오염될수록 하나님이 정해 주신 창조질서와 성윤리와 생명윤리가 무너져 가고 있다. 성경관의 차이에서 발생된 현상들이다.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