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문밖에 (박화목)
당신이 문밖에 와서 두드렸어도
내가 미처 듣지를 못하였습니까?
당신이 부드런 음성으로 불렀는데
내가 대답을 안 하였습니까?
당신이 흰 눈을 밟고 창 바깥을 지나갔어도
내가 미처 못 보았습니까?
당신이 나를 찾아서 손짓하는 흰 손을
내가 깨닫지를 못하였습니까?
아 서러운 나의 이목(耳目)이여!
마음일랑 안타까이, 당신을
찾아서 헤매길 더하였거늘……
이제 당신은 정녕 문 열고 들어서라
그리고 나의 앞에 고운 얼굴을 보이라
밤과 밤을 이어간 외롬이 그치어
나로 하여금 그대 수정(水晶)같은 이마에 입
맞추기 위하여…….
이 시는 시인이자 아동 문학가 박화목 선생의 <당신이 문밖에>라는 시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여러 신학교에서 수학한 박화목 시인은 평생 신앙인으로 살았습니다. 박화목 시인이 여러 신학교에서 수학한 기록은 남아 있지만, 목사 안수에 대한 기록도, 목사라는 기록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가 안수를 받은 목사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 기독교 기관에서 일했고 신학교 교수도 지냈습니다. 박화목 시인은 여러 편의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영적으로 둔감한 자신을 책망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둔감으로 주님과 만남이 어려운 자신을 의심합니다. 본 시에는 네 개의 의문문이 있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부족한 행동에 관하여 묻고 있습니다. 아쉬움 가득한 자신의 삶과 행동을 주님께 여쭈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주님의 은혜에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이 주님이 보내시는 신호를 잘 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주님께 대답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주님의 발걸음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계속되는 것은 시인의 열망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어찌하건 주님과 가까이하고 싶습니다. 민감해서 주님이 문밖에서 두드리면 달려나가 문을 열어 주고 싶고, 주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시면 주님께 대답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손짓을 반드시 발견하고 싶습니다.
아 서러운 나의 이목(耳目)이여/ 마음일랑 안타까이, 당신을//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적 둔감을 탄식합니다. 주님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데 눈과 귀가 따라주지 않습니다. 자신의 눈과 귀가 너무 둔함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으나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합니다. 시인은 이런 안타까운 자신의 영적 상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기대에 미치는 못하는 자신의 영적 삶을 자성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면서 주님께서 나타나 주시길 구합니다. 자신의 영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찾아와 나타내 주시길 구합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시면 주님을 만나겠다고 선언합니다.
박화목은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입니다. 그는 아동 문학가로 많은 동시와 동화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박화목은 시인이기보다는 아동 문학가로 더 알려졌습니다. 1941년 《아이생활》에 동시〈피라미드〉와 <겨울밤〉이 추천되면서부터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보리밭> <과수원길>등 서정성 짙은 시와 동시를 다수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 <보리밭>은 가곡으로, 또〈과수원길>은 동요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사람 중에 두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박화목이 작시한 인구에 회자하는 노래를 소개합니다.
<보리밭>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이지 않고 저녁노을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과수원길>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박화목은 황해도 황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만주로 건너가 봉천 신학교를 수학했고, 평양 신학교와 한신대학교 선교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여러 신학교에서 공부했지만 목회자 사역자가 아닌 시인으로 활동했습니다. 시집으로〈시인과 산양>,〈주의 곁에서>등이 있으며, <그대 내 마음 창가에> <천사와의 씨름> <환상의 성지순례>, 동시집 <초롱불> <꽃 이파리가 된 나비>, 동화집 <아기별과 개똥벌레> <인형의 눈물> 등과 저서 <아동문학개론>을 남겼습니다.
시인은 언론계.교육계에서의 활동도 활발해 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의 문예담당 PD, 기독교 방송국 편성국장, 한국방송회관 상무 이사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아울러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장, 중앙신대(현 강남대)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아동문학회 부회장·크리스찬문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습니다. 시인은 2005년 7월 9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수상경력으로는 한국전쟁문학상, 한정동 아동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제2회 천등(天燈) 아동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부산시 어린이대공원에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건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산 중구청은 6·25전쟁 와중에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태동(胎動)한 박화목(1924-2005) 작사, 윤용하(1922-1965) 작곡의 대표적인 국민가곡 <보리밭> 기념 노래비를 자갈치시장 친수공간에 세웠다고 합니다. 이 노래비에는 <보리밭> 악보 원본과 이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작곡가 윤용하 선생의 생애 등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