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의 책상 위에 며칠 전 밤, 눈에 띄는 책이 있어 저도 모르게 손이 갔습니다. 제목은 '아내의 병상에서'였습니다.
"아차, 아버지가 이 책을 주셨었지. 읽는다는 것을 깜빡했구나..." 저는 아차하는 마음을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책을 열었습니다.
작년 11월 어머니의 소천까지 병상에서 어머니를 간호하며 아버지가 써 내려간 일기를 책으로 출판해 얼마 전 제게 보내주셨는데 제가 바쁜 삶을 핑계로 못 읽고 책장에 넣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좀 퉁명스러운 일명 '츤데레' 성격이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순애보였습니다.방사선치료를 의사에게 제안받고, 하기 싫다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방선을 수차례 진행하다가 어머니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자기 말을 믿고 따라주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자 아버지가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많은 후회와 눈물을 흘렸던 시간이 책에 고스란히 적혀있었습니다.
폐암 진단을 처음 받았던 충격적인 날부터, 장례까지 아내를 향한 남편의 마음이 세밀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을 자식들이 얼마나 세심히 알 수 있을까요? 그 자세한 감정을 당사자 외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교회력으로 어버이 주일이며, 동시에 미국력으로 어머니의 날입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히브리 성경에서 '보호자'라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나를 보호하신 어머니... 의식없이 소천하신 연약한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어떻게 보호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명한 것은 20대 이후의 기억이 대부분인데 그때는 집 밖에 살아서 기억이 많지 않고, 어린 시절을 생각해 봐도 기억이 아련합니다.
제 자녀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아들들은 내가 그들을 보호했던 지난날을 기억할까? 밤새 잠을 재우고, 날마다 기저귀 갈고, 졸다가 고개를 떨굴 때 잡아주고, 차도로 뛰어들던 손을 덥석 잡고, 넘어지던 몸을 뒤에서 잡아주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
깨달은 것은, 보호를 받는 자는 자기가 누구에게 어떤 보호를 받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호를 받아 그 자리에 있는데, 그 보호가 어디서 왔는지 잘 모릅니다.
회개가 나왔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많이 보호하셨던 것일까? 과연 나는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자격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