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하기를 카이퍼와 이승만은 서로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도 이 두 분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그 두 분은 당시에 최고의 지성과 학력을 가졌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라가 거의 절망에 빠져있을 때, 나라를 건져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도록 한 것이다. 셋째는 명연설가요, 명설교가로서 민족을 깨우고 새로운 방향을 세우도록 한 것이고, 넷째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생명 걸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소망이 있었다. 그들의 사역은 정권을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교회를 통해서 든든한 나라를 세우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두 분은 철저한 반공주의 노선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란서 혁명과 칼 맑스에 의해 촉발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이론의 무정부주의는 러시아가 레닌과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1917년에 공산당의 나라가 되자, 온 세상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붉게 물들고 말았다. 동구의 모든 나라가 공산화되었고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자신들의 혁명완수를 위해 수많은 무고한 인민들을 죽였다. 공산주의는 허울 좋은 이상 국가로 내세우면서 철저히 죽이고, 거짓말로 당을 지키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공산당은 유토피아를 내어놓았지만, 실상은 공산당에 반대하면 아무런 재판 없이 죽이는 한마디로 <도살국가>였다. 그들은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구호로 노동자와 농민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려고 <평등>이란 말을 도입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단하는 무서운 집단이었다.
사상이 다르면 생각이 다를 것이고 생각이 다르면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 전 세계는 공산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이승만은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6년 만에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을 한통속으로 보고, 1926년 벌써 공산주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당부당(當不當)을 논리적으로 소논문을 발표했었다. 일찍이 이승만은 <공산당은 호열자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라고 했고, 세계적인 석학이자 구 소련의 작가 솔제니친(A. Solzhenitsyn)은 <공산주의는 치료할 수 없는 미치광이 병>이라고 했다.
이렇듯 공산주의 실험은 벌써 끝났다. 한 세기 전에 이승만이 공산주의를 비판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예지를 갖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이다. 필자가 1986년에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시골의 한 농부 집에서 식사 중에 그는 내게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바로 과거 공산당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자 해방을 구호로 내세운 공산혁명이 성공한 나라는 모두 독재국가가 되었고 개인숭배를 체계화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스탈린과 모택동이 그러했고, 김일성 3대 세습이 그러했다. 특별히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하여 종교 탄압을 극대화했다. 옛 소련은 공산혁명 후에 기독교인 2,700만 명을 학살했고, 그 외에도 공산당을 반대하는 동족을 7,000만 명을 학살했다. 중국 공산당의 모택동은 <대약진 운동>을 한다는 명분으로 4,000여만 명을 굶겨 죽였고, 베트남이 공산화된 이후에 약 200만 명이 살해되었다. 캄보디아도 폴포트에 의해 200만 명의 주민이 학살당하고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캄보디아는 학살된 유골을 모아둔 전시장이 지금은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나는 그 비참한 장면을 보고 참으로 공산주의 사상이란 얼마나 무서운지를 똑바로 깨닫게 되었다. 북한도 고난의 행군 기간에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오늘날도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면 노동교화소로 보내어지고 총살로 다스려지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평등이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지만, 가진 자를 빼앗아 가난한 자를 준다는 이런 논리는 틀렸다. 이렇다 보니 공산주의의 최대의 방해자는 바로 기독교였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의 예루살렘이라는 평양을 이제는 공산주의 운동의 본부로 만들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예견한 이승만이 100년 전에 공산주의 위험을 설파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한 이승만은 감옥에서 <독립정신>이라는 글에서 <러시아의 음흉한 마수>라고 썼고, <러시아가 요동 반도를 침범함>이라는 글에서는 공산당의 음흉한 계획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는 목사요, 신학자요, 대설교가요, 연설가요, 당 총재를 지내고 후일에는 수상의 자리에 올라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개혁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가 소수정당의 당수였을 때, 거대 당의 대표는 뜨룰스트라(Mr. Troelstra)였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서 사회주의 곧 공산주의 이론에 해박하였고, 의회에서 카이퍼의 적수가 되었다. 그런데 카이퍼 박사는 뜨룰스트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에 맞짱을 떴다. 카이퍼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개혁주의자로서, 의회가 <혁명>을 예찬하고 맑스주의로 넘어가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카이퍼는 원래 연설의 달인에다가 웅장하고 논리적인 말을 통해서 왼손에는 포켓 성경을 들고, 사상은 사상으로, 논리는 논리로 대항하면서 뜨룰스트라가 이끄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이론을 하나씩 격파해가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기독 입국론을 세웠다.
이승만과 카이퍼는 동양과 서양 서로 반대 편에 서 있었지만, 공산주의를 막아냈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