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시애틀에 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조금 더 활발해진 듯한 자연이 우리를 바깥으로 부르는 것 같고, 푸르고 환한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더 너그럽게 하는 듯합니다. 한국은 설날을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명절을 지내고 있는 이 시기에 형제와 한 가족 된 교회 공동체가 더 사랑하고 더 하나 되고, 더 잘 돌보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형제와 나누는 말씀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숨 쉬듯이 하나님을 찾고 아뢰고 의지해야 하는 것이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그렇지만 가끔 절박한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나, 몹시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중한 병에 걸려서 주님의 치유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 더 절실히 매달리고 간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에스라의 기도는 이런 절박한 상태의 기도였습니다. 지도자 에스라는 이스라엘로 귀환하면서 많은 물질과 가축들을 데리고 떠나면서 왕에게 호위할 군대를 붙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였기 때문에 그 제안을 하는 것이 민망했기 때문입니다. 3차 귀환을 이끌었던 느헤미야는 귀환하면서 군대의 호위를 받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누가 믿음이 더 크고 작으냐 따지는 것보다는 두 사람의 성향 차이일 것입니다. 누구도 옳고, 그르지 않습니다. 다 다르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다 쓰시고 하나님의 일을 그 나름의 성격에 따라 하게 하십니다.

에스라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길을 나서야 하는데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큰소리는 쳐 놨지만, 막상 이 많은 사람과 수많은 물건을 가지고 먼 길을 나서는데, 곳곳에 있을 도적을 피해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에스라는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로 이 난관을 돌파해 나갑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은 난관을 만났을 때 바로 기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의 모든 지혜와 인맥과 술수들을 이용해서 먼저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의 방법은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한가지씩의 방법을 통해 이 일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방향으로 보내시기 위해 우리가 계획해 놓은 것을 못 하게 막으실 때도 있습니다.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이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 우리 길을 막으시는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소아시아로 가려는 것을 몇 번에 걸려 막으실 때 바울을 실망하지 않고, 유럽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유럽에 복음이 들어가게 되는 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역경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크기와 넓이를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기도하면서 받았던 응답과 거절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개별적이고 세세한 인도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의 특별한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형제가 기도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세한 사항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펼쳐 나가는 형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다짐하는 형제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