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때 “에디 리켄베커”라고 하는 전설적인 미국의 전투기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300시간 전투비행에 백번이 넘는 공중전에서 생존함은 물론이고, 26번의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12살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조종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차량 운전병부터 시작하여 결국은 비행기조종사가 되어 전쟁에서 계속되는 승리를 이끌어내며 1차 세계대전 중 가장 훈장을 많이 받은 미국인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전쟁 후 기자가 물었습니다. “비행을 나가 전투할 때 두렵지 않았습니까?”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 않으면 용기도 없습니다. 용기란 두려워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엘살바도르 단기선교팀 간증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도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나 피하고 싶었지만 담대함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는 용기의 고백들 아니었습니까?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도, 여전히 죄성을 지닌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는 길로 가려면 반드시 담대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에게는 다 불순종의 피가 흐르고 있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안이해지고 편해지려고 하는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하는 복음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새 역사를 이루는 말씀은 언제나 저항을 가져오게 되지만, 오직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순종하게 되면 새 생명력으로 역전승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끝까지 담대하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용기의 원천이 내가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내 힘으로 용기를 증명하려는 사람은 요란하고 화려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진짜 운명을 바꾸거나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말씀을 순종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자원해서 좋은 것을 남에게 양보한다거나, 좀 억울해도 기꺼이 손해를 본다거나, 아무도 하지 않는 힘든 일을 한다거나, 정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자기한계를 뛰어넘어 순종하는 일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로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힐링 센터(healing center)”가 아니라 “킬링 센터(killing center)”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갈수록 교회를 힐링 센터로만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짜 위로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사람들의 칭찬과 보상심리를 위해 ‘하나님께 열심’을 갖는 것으로는 끝까지 승리할 수 없습니다. 먼저 내 뜻이 죽고 자아가 죽는 Not I, But Christ!의 믿음으로 주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먼저 주님의 사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주님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체험하는 진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안일함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가든지 보내든지 돕든지’의 사명과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세우는’ 사명에 먼저 집중하므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열심을 체험하는 제 2선교관 구입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