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찾고, 사랑의 아름다움은 영혼으로 찾는다오.” 우리에게 눈이 있는 많은 특권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은혜가 아닌가한다. 자연은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나의 본래 전공은 주거학이다.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공부할 때이다. 어느 학기인가 South Carolina에 있는 Savannah 와 Charlston으로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견학하기 위하여 Field Trip을 떠나게 되었다. 빅토리아 양식, 고딕 양식, 콜로니얼 양식등 각기의 특징적인 스타일로 지어진 멋진 건축물들을 견학하면서, 우리는 그 규모의 정교함과 웅장함등 아름다운 건축미에 감탄하였다. 이제 모든 일정을 끝내고 플로리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때는 단풍이 지기 시작한 가을의 석양무렵이었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노을이 South Carolina의 가을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주변의 단풍과 어우러져 극치의 멋을 자아내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인간이 제아무리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든다 해도 하나님 지으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를 수는 없구나.”

내가 영적인 세계에 최초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 시작할 즈음과 거의 일치한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빨려들어갔던 것 같다. 친구들이 나 죽으면 관에 수영복을 넣어주겠다고 할 정도로 수영을 좋아했지만 실제로 수영자체를 즐겼다기보다는 바다를 좋아하다보니 마치 수영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한 번은 국민학교 3-4학년 무렵으로 생각된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있는 그 수평선 넘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굼하여 수평선을 향하여 마냥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오빠가 헐레 벌떡 다가왔다.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네 키의 두 배는 더 깊은데야!”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산에 거의 미치다시피 산을 좋아했다. 학교내 등산반에 가입하여 춘계, 추계, 하계, 동계등반 철철이 산을 따라 다녔다. 주말에는 늘 가까이 있는 북한산에 산행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들은 내가 산타기를 좋아하는 스포츠형의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큰 오해다. 다만 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파노라마의 장관을 보고싶어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소위 ‘산악인’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었다. 바다를 찾고 산에 오를 때마다 늘 내가 던지는 같은 질문이 있었다. “누가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것이 어느날 저절로 생겨났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 안에 너무나 아름다운 질서와 조화가 있었다. 주거학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축의 조형미로서 ‘Variety in Unity (통일속의 다양성)’을 가르친다. 자연이야말로 ‘Variety in Unity’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셈 아닌가? 늘 산을 오르다보니 수많은 나무들을 대하며 그 잎사귀들을 바라본다. 단 하나도 완전하게 동일한 초록빛은 없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화사한 초록색과 안개비속에 촉촉히 젖어있는 싱그러운 초록색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가? 작게는 나뭇잎하나에도 나를 끄는 매력이 있지만 크게는 전체적인 산등성이의 모습은 얼마나 멋지고 장엄한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산과 하늘이 만나 그려내는 선의 예술을 과연 그 어떤 화가가 흉내낼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이 모든 것을 누가 만들었을까?” 끊임없는 창조주에 대한 추적은 나로 하여금 결국 성경말씀 한마디에서 그 종착역을 만났고 거기서 나의 모든 생애를 안주하게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가 진실임이 입증되었다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성경의 기록도 진실일것임이 분명하기에, 나를 이토록 매료시킨 자연이라는 멋진 예술품도 위대한 예술가요, 조각가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작품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처럼 멋진 자연을 지으신 분이 또 나를 그렇게, 아니 그보다 더 완전하게 지으셨음을 알고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요즈음은 거리 거리를 드라이브하는 길이 마냥 신난다. 좌우에 황홀하도록 어우러져가는 단풍의 극치속에서, 내 마음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감동되어 이렇게 고백하곤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