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기독교총연합회, 에스더기도운동 등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이 지난 29일 서울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인 북한을 비호하는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인권이사회 인권이사국 지위에 있는 건 합당치 않다며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
이들은 성명에서 탈북민은 국제법상 명백한 '난민'임을 누차 강조했다.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을 억류하고 '난민'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한편으론 난민 규약에 가입한 중국이 '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사지로 내몰고 있는 만행에 대해 정부가 더욱 강력한 대응을 해주기를 요청하는 뜻도 담겨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나 실제론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다. 다른 민주국가처럼 인권 보호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식 개혁 개방 정책으로 경제 부흥과 현대화를 이룬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국제사회의 인식이다. 최소한 아무 힘 없는 '난민'을 참혹한 고문과 형벌이 기다리는 북한으로 되돌려보내는 일만은 해선 안 된다는 거다.
유엔과 EU 등 국제사회는 탈북민의 강제북송을 반인도적 행위로 규정하고 중국 정부에 중단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그런 국제사회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인 10월 9일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민 500~600여 명을 마치 굴비 엮듯이 포승줄에 묶어 북한에 인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초지일관 변함없는 이런 자세는 우리 정부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역대 정부는 탈북민 문제에 관해선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표방해 왔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경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런데 이런 대중국 외교 방향은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했다. 말이 외교이지 사실상 중국 눈치 보기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이런 대중국 외교기조가 윤석열 정부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다. 지난해 11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이 재석 260명 중 찬성 253명 기권 7명으로 최종 가결된 게 변화의 시작이다. 결의안은 중국이 "북한 이탈주민이 대한민국이나 제3국으로 이동하도록 최대한 협조할 것"을 촉구하며 "추가로 강제 북송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알려진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야당의 협조를 위해 좀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우리 국회가 중국을 직접 겨냥해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게 지난 2017년 '중국 사드배치 보복 중단 촉구 결의안' 이후 처음이란 점에서 유의미하다.
정부는 이어 지난 23일 개최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을 향해 '탈북민을 포함한 해외 출신 이탈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강제송환금지 원칙 등 국제 규범을 존중하고 난민법 제정을 검토하라'고도 했다. 비록 권고 사항이지만 우리 정부가 중국 대표가 참석한 유엔 회의장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직접 요구하기는 처음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탈북민 수는 196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99명이 20대와 30대, 이른바 'MZ 세대'였고, 외교관 등 엘리트 계층 탈북민도 10명 안팎으로 201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민 중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건 김정은 체제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 젊은이들은 한국 드라마·영화·K팝 등 영상물을 몰래 보다가 적발될 경우 2020년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의해 노동교화형이나 최대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이런 반감과 불안감이 탈북 감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통일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북한 인권백서 2023'에서 "많은 탈북민이 한국 드라마·영화 등 영상물을 몰래 보는 행위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고 증언했다"며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는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가 된 2013년 이후 전반적으로 강해졌다"고 기술했다.
과거에 탈북하는 사례로 보면 가난과 굶주림, 북중 국경을 드나들다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지배체제에 실망한 이들이 한국을 동경해 희망과 미래 비전을 위해 탈북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 게 통일부의 분석이다. 지난해 5월 연평도 인근 해상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9명의 북한 주민이 어선을 타고 집단 귀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아직까지 중국의 탈북민 강제북송 기조에 별다른 변화의 조짐은 없다. 지난해 10월 집단 북송 이후 국제적인 반대 여론에 부담을 느껴 당분간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쉬쉬하며 007작전 같은 북송을 지금 이 순간에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정부와 민간기구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더욱 긴밀히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게 최근 북한 김정은 체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자유를 갈망한 '정치적 탈북'에 대비하는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막혔던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리면서 육로와 해상 가릴 것 없이 탈북이 증가할 가능성에 대비할 뿐 아니라 국내 입국 탈북민 정착 지원에 만전을 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