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
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

어렸을 적에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분들이 가끔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들은 족보를 제작하는 일을 했다. 지금도 그때 만든 족보가 나에게 있다. 거기에 내 아들의 이름까지 올라 있다. 아직 손자의 이름은 올리지 못했다.

족보는 그 집의 뿌리다. 우연히 존재하는 집이 아니고 조상 대대로 연결된 집이라는 말이다. 족보는 우리를 과거로 연결시켜준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로 연결시켰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1).

왜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을까? 메시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시리라는 구약의 예언 때문 이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날 특별한 ‘씨’에 관해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5-18).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나오리라고 믿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22:42).

Saint Matthew and the Angel
Saint Matthew and the Angel by Michelangelo Caravaggio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 다윗으로부터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갈 때까지 열네 대, 그때로부터 예수님이 나시기까지 열네 대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는 천여 년,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시대까지는 4백여 년, 그리고 바벨론 포로시대부터 예수님까지는 약 6백여 년이다. 왜 마태는 서로 다른 기간을 똑같은 열네 대로 나누었을까? 몇가지 설이 있지만 시원한 대답들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왜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 다윗으로부터 예수, 이런 식으로 이등분하지 않고 다윗과 예수님 사이에 “바벨론으로 잡혀간 때부터”라는 항목을 넣었을까? 그 사건과 예수님의 탄생이 역사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설정하고 대답을 찾아보자.

마태는 예수님의 계보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그 이전의 언약들과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의 자손들과 ‘구원의 언약’을 맺으셨다. 소위 모리아 산의 언약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의 대에 이르러 꽃을 피우게 된다. 다윗은 중근동 일대에 강력한 왕국을 세웠다. 사람들은 늘 다윗의 때를 그리워했다. 다윗과 같은 지도자가 이스라엘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에 나라는 점점 빈사(瀕死) 지경에 이르렀다. 멀쩡하던 나라가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인해 아들 르호보암 때 두 조각이 되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베냐민과 유다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가 북왕국을 이루고 ‘이스라엘’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남왕국은 ‘유다’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다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망했다.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역사의 교훈을 무시했다. 주전 606년부터 바벨론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더니 주전 586년에 이르러 완전히 몰락하고 지도자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혀갔다. 비록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70년(주전 536년) 만에 소수의 무리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 나라를 다시 일으킬 수 없었다. 그들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그리고 헬라에 이르도록 속국의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주전 166년에 시작된 마카비 혁명으로 로마에 정복당하는 주전 63년까지 약 100여 년 동안 하스몬이라는 독립 왕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긴 했지만, 성경은 그 시절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요약하자면,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부터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적 공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계받고 버림당한 시간’이었다. 마태는 그 어두운 시간의 터널 끝에 마침내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왕으로, 그리고 구원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마침내 성취되었다는 역사적인 선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태는 예수님의 계보를 세 등분으로 나누었다. 포로 귀환 이후의 암울한 시대는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조명하는 데 꼭 필요한 배경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