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이자 비영리선교단체 TMF(Thanksgiving Mission Foundation)에서 미자립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영길 목사는, 감사한인교회를 은퇴하면서 평생의 숙원이었던, 성경을 가슴으로 읽고 묵상하며 집필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현재까지 <가슴으로 읽는 성경> 시리즈 8권- ▶ 창세기-은혜와 회복, ▶ 마태복음-제자되기, ▶ 출애굽기와 민수기-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 ▶ 요한복음-하나님의 아들, ▶ 레위기와 신명기-십자가로 푸는 율법, ▶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방인이 만난 예수, ▶ 열왕기상하와역대기상하-왕들의 이야기, ▶ 로마서-로마에 사는 그대들에게 -을 집필했습니다.

기독일보는 <가슴으로 읽는 성경> 시리즈의 두번째 책 <마태복음: 제자되기>의 내용을 칼럼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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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
김영길 목사(감사한인교회 원로 목사)

모든 저자들은 목적을 가지고 저술한다. 그래서 책을 잘 읽는 사람은 먼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잘 읽으려면 먼저 마태의 집필 의도를 발견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주옥같은 말씀들을 가슴으로 읽을 수 있다. 마태는 왜 그의 복음서를 기록했을까? 마태는 예수님을 “다윗(왕)의 자손”이라고 부르는데 이 칭호가 다른 복음서들보다 더 자주 등장한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도 “유대인의 왕”을 찾아왔고, 21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입성(入城) 장면에서도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을 때에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셨다(27:11). 그리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罪牌)가 걸렸다(27:37).

왕에게는 신하들과 백성들이 있다. 예수님에게도 제자들과 무리들이 있었다. ‘제자’는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 단어는 마가복음에 46회, 누가복음에 37회 나오는 반면, 마태복음에는 73회나 나온다. ‘제자 삼다’라는 동사는 신약성경에 4회 나오는데 마태복음에만 세 번 나오고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마태는 자주 ‘제자’와 ‘무리’를 구별한다. 대표적인 예가 5장 1절이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무리’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말씀과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면서놀랐다. 무리들은 아직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되지 않은, 일종의 구경꾼들이었다. 훗날 그들 중에 다수가 예수님을 가리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그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그들의 신분이 ‘무리’에서 ‘제자’로 변화되기를 원하셨다.

마태는 제자들의 훈련과 성숙, 그리고 변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다른 복음서에서 제자들은 깨달음이 없고 믿음도 없는 자들로 표현된다. 그러나 마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작은 믿음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두 번이나 소량의 음식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다.

한 번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이상을 먹이셨고, 그 다음에는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로 4천 명 이상을 먹이셨다. 그 후에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불쑥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남은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남은 떡이 아니었다. 바리새인의 위선적인 교훈을 주의하라는 뜻이었다. 그날 제자들의 반응에 대한 마가와 마태의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막 8:21).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 16:12).

마가는 제자들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마태는 제자들이 마침내 깨달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하오이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는 장면에서 마가는 제자들의 놀람과 두려움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탄식하셨다(막 4:40). 그러나 마태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구하여 담대하게 물 위로 걸어가는 장면을 삽입한다. 비록 잠시후에 베드로가 물에 빠지고 말지만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없는’이 아니고)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면서 손을 붙잡아주셨다(마 8:26).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고 경배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 14:33).

마가는 그의 복음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강조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그러나 마태는 비록 제자들 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大)사명을 주시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처럼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제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양육하시는 과정, 제자들이 변화되고 성숙해가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과정을 일관성 있게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