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Photo : ) 김인수 목사(전 미주장신대 총장)

“눈물을 흘리며 씨는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실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현재 미국에는 약 20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정확한 수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는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주재원, 유학생, 불법으로 입국하여 영주권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록에 의한 한국인 이민단이 미국 하와이에 도착한 것은 1903년 1월 13일입니다. 인천 내리감리교회 목사 존스(Johns)는 1901년 흉년과 기근으로 고통당하고 있던 한국인들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방책으로 미국 이민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경기도 여러 교회에 다니면서 미국 이민을 격려하여, 드디어 1902년 12월 22일 121명의 이민단이 제물포항에서 떠났습니다.

 121명은 일본 상선으로 일본을 향했는데, 그 증 28명의 교인 가족 50명과 인천 내리교회 안정수 전도사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02년 12월 29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국 증기선 갤리코 호를 타기 전, 건강검진을 다시 해서, 102명만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향해 도착했는데 14일간 항해 동안 안정수 전도사의 인도로 여러 차례 선상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이민단 63명이 1903년 3월 3일에 도착했고, 같은 해 8월에 카오쿠 사탕수수 농장에서 52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이민교회 첫 번째 예배였습니다. 1904년 6월까지 약 2,800명의 한인이 도착하였고, 1904년에는 총 14개 교회에 406명의 교인으로, 한인 전체 인구 2,800명의 15%였습니다.

 당시 노동자 월급은 16달러에 불과했는데, 한인 이민들은 2,000달러를 모아 학교를 세울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돈은 300명 이상 노동자들의 한 달 치 봉급과 맞먹는 액수인데, 그 돈을 들고 미국 감리교단을 찾아가 학교를 세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와이 한인기숙학교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조상들은 하루 종일 땡볕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하면서도, 후손들의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1909년 첫 졸업생 중에, 후에 주미 대사를 지낸 양유찬 박사도 있습니다.

 우리 이민 조상들은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세운 것은 이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고난을 극복하려는 뜻이었으며, 학교를 세운 것은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믿음의 조상들의 비전이었습니다.

 첫 이민이 미국에 온지 121년이 되는 금 년, 이민 조상들의 꿈에 부응하여 후손들은 현재 미국의 정부, 의회, 사법부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서서히 한인들의 우수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비록 약소국이었고,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조상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한 세기가 지난 오늘, 한인들은 미국의 각 분야에서 존재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며, 배려하심이며, 조상들의 눈물의 기도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말고, 영적으로도 성숙한 사람들이 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가르칩시다.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첫 째 하나님의 은혜요, 둘 째 조상들의 눈물의 기도와 노력의 은덕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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