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Falls 예수소망교회 담임 이용남 목사
(Photo : ) Great Falls 예수소망교회 담임 이용남 목사

구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를 발견하게 된다. 앗수르에 멸망당한 북 이스라엘과 바벨론에 멸망당한 남 유다는 각각 카톨릭과 개신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솔로몬 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내려가는 것을 경계하여 단과 벧엘에 우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을 가리켜 배역한 백성이라고 하셨다. 남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은 남 유다를 패역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배역한 백성이요, 남 유다는 타락하고 부패한 패역한 백성인 것이다. 오늘날 카톨릭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배역한 무리요, 개신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타락하고 부패한 무리라는 것이다.

에스겔서에서 북 이스라엘을 형 오홀라로 표현하고 있고, 남 유다를 가리켜 아우 오홀리바로 표현(겔23장)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다. 오홀라는 '그녀 자신의 장막'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거짓 장막을, 오홀리바는 '나의 장막이 그녀 안에 있다' 는 뜻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오늘날 오홀라는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형 카톨릭을 말하고, 오홀리바는 아우 개신교를 의미한다.

아무튼 이들은 다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이방을 사모하고 우상 숭배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표현이 '연애하고 사모하여 행음하였다'이다. 오홀라인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를, 남 유다는 앗수르 뿐만 아니라 바벨론을 사모하고 행음하였다고 한다. 오홀라와 오홀리바가 이방과 행음하기 위하여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답게 가꾸었을까. 이처럼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사치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가. 과거 카톨릭의 화려함과 세속적인 것을 오늘날 교회는 모방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하지 않는가.

세상과 짝하기 위해 교회는 점점 더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세상에 속하기 위해 교회는 화려함과 아름다움만을 향해 나아간다. 세상을 유혹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포기하고 세상 것으로 대신한다. 그래서 교회의 화려함은 주님의 수치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한 오홀라 오홀리바는 아닌가?
오늘날 교회는 누구를 위하여 치장하고 가꾸며 아름다움을 뽐내는가?
주님이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신 죄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교회인가?
병든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 헐벗은 자는 과연 출입할 수 있는 교회인가?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추하고 더럽고 가난한 자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교회는 아닌가?
부자만이 갈 수 있는 교회는 아닌가. 의인(?)만 갈 수 있는 교회는 아닌가.
지금 우리들의 교회는 어떤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인가, 아니면 세상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꾸며진 교회인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이 상실된 채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교회는 아닌가. 외관상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음에도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육신적 육안으로 초라함만을 탄식하고 애통하며 부끄러워하기까지 하지 않는가. 진짜 탄식하고 애통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교회는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교회가 아니라 사치스러운 교회요 세상적으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교회이다.

분열 왕국 시대 이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전을 바벨론에서 돌아온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독려로 백성들과 함께 건축하였다. 그들이 지은 성전은 과거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초라하고 보잘것 없었다. 그러나 이전 영광보다 훨씬 큰 영광을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학2:7-9)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교회는 잊고 있다.

사람들의 기술과 미적 감각으로 치장된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세상 것으로 휘황찬란할 뿐 하나님의 거룩함은 없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건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케스트라 같은 성가대가 멋진 연주와 합창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감동은 없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싸구려 감동을 참 감동으로 착각한다. 하나님을 인하여 감동하기 보다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동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은 사라지고 세상 것들로 가득 찬 교회가 어찌 거룩할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사람들의 눈에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세상 것을 다 갖다 놓아봐라. 하나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세상 것은 재와 같이 사라지고 연기와 같이 사라질 것이며 설령 남는다 해도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니 사람들은 다른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하고자 한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 만족함을 주고자 교회는 아름다움을 강조한다(이런 교회는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예루살렘 성전같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함이 있는 교회를 원한다.

창세기 6장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지 않았는가. 오늘날 교인들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자기들의 좋아하는 취향대로 교회를 꾸미고 있다. 그것이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심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증거이다.

사람들은 교회 건물 뿐 아니라 예수님 조차도 미화시키고 있다. 이사야를 읽어보라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가시 면류관과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온 몸에 물과 피를 흘린 주님이 교회의 머릿 돌인데 어떻게 세상의 아름답게 만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겠는가.

'겉' 은 화려하고 아름다움은 있으나 '속'은 썩어 냄새가 나는 교회에서 그리도 행복하고 만족한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찬양대의 노래가 어찌 천상의 거룩한 찬양과 견줄 수 있겠는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스랍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며 찬양했건만 어찌 벌레 같은 인생은 망각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높여 얼굴을 뽐내고 발 맵시를 드러내며 하나님 앞에서 노래한단 말인가.

가려라 가려라.
얼굴도 발도 몸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가려라.
하나님의 영광으로 다 가려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 하여져라.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든 하와를 보고 뭐라 했는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창2:23)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신부된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값 주고 산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이 드러나야 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가득차야 하고,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한다.

또 그리스도의 가난함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탄식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죄인을 향하신 사랑이 묻어나야 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참 교회다.

 주님은 말구유에 나셨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아리마대 요셉의 빈 무덤에 묻히셨다.

교회여! 주님을 만나려거든 말구유로 가라.
교회여! 주님을 알려거든 십가가로 가라.
교회여! 주님과 함께 살려거든 빈 무덤에 묻혀라. 그리고 주님과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세상의 빛이 되라
그러면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다. 교회는 주님이다. 교회는 천국이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케 하려 하신 주님의 교회여! 가난을 미덕으로 알고, 세상 모든 이들로 부요케 하고, 교회는 가난을 사랑하라. 십자가를 가지고 세상 물질을 끌어안으려 하지 말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과 성령을 소유하고도 값비싼 세상 아름다움으로 밖을 꾸미지 말라. 세상이 너의 아름다움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보지 못한다면 어찌 세상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너의 아름다움이 어찌 오홀라 오홀리바처럼 세상을 연애하고 사모하고 행음함이 아니겠는가

교회여! 생각하라.
교회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주님의 수치라는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거룩함만이 주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거룩함만이 주님의 영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