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비전교회(강준민 목사)는 연말을 맞아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나님의 지혜로 성장하는 축복 공동체'라는 주제로 18일(월)부터 23일(토)까지 오전 5시 15분에 남가주 목회자를 초청해 개최하고 있다.
구자민 목사(18일), 백정우 목사(19일), 노창수 목사(20일), 권혁빈 목사(21일), 김태형 목사(22일), 김우준 목사(23일)이 강사로 서서 말씀을 전한다.
특새 셋째 날, 노창수 목사(남가주사랑의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세요"(삼하 6:1-11)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어떻게 다루었는가에 의해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엇갈렸다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나눴다.
"다윗 왕은 왕국을 세우고 자기 성을 지은 후에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는 계획을 세웠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다. 다윗 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를 가든지 법궤를 중심으로 움직였다.요단 강을 건너갈 때도 법궤를 매고 건넜다. 여리고 성을 돌 때도 법궤를 메고 돌았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 중에 법궤를 빼앗겼다. 블레셋 신 다곤의 성전에 법궤를 두었는데 오히려 블레셋에 저주가 되었다. 이들은 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 보냈고, 아비나답 집에 법궤가 있었고 다윗은 법궤를 자기 성으로 옮기길 원했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새 수레로 그것을 운반했다. 법궤 뒤를 따라가서 찬양하고 악기를 연주했다. 법궤를 운반하던 소가 갑자기 뛰는 바람에 법궤가 떨어지려 하자, 웃사가 그 법궤를 붙들었다가 즉사했다."
그는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실했다며, 웃사의 죽음을 인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웃사의 죽음이 이해가 가는가?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한다. 그 법궤를 운반하다가, 그것이 떨어지려 하자 붙들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죽게 하셨다. 하나님이 너무 하지 않는가?"
"우리 입장에서 웃사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본문은 인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본문을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운반할 때 세 가지를 조심하라 하셨다. 법궤는 절대 손으로 만지면 안되며, 법궤를 보지 못하게 하셨고,(법궤를 들여다 보다 70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수레를 사용하지 말라 하셨다. 레위인들이 어깨로 운반해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는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 아닌, 비실용적이고 비효율적이더라도 하나님의 방식에 순종하는 데 축복의 비결이 있다며, 웃사의 죽음은,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상실한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경고였다고 말했다.
"웃사의 죽음은 한 사람의 실수에 대한 징벌이 아니다. 하나님을 망각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였다. 법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루어야 한다. 사울 왕은 법궤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방치했다. 엘리 제사장이 법궤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빼앗겼다. 아비나답은 법궤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자기 집에 방치했다. 법궤의 중요성을 망각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웃사의 죽음으로 아무도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시려 하지 않을 때, 법궤를 자기 집에 석달 동안 모신 자가 오벧에돔이다. 그가 법궤를 모신 석달동안 그의 집에 축복이 내렸고, 이후 그의 후손이 성전 문지기로 기쁘게 섬김으로 복을 받게 된다.
이어서 그는 '손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악순환으로 살지 말고 처음부터 순종하고 살라는 뜻이다. 잘못하면 회개하고 돌아가야 하지만, 이것이 밥 먹듯 계속되면 안된다. 죄 속에 갇혀 살지 말고 처음 부터 순종하라는 의미"라며, 현장예배가 온전히 회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배가 다시 살아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 현장에 나와야 한다. 운동 경기도 경기장에 가서 보는 것과 TV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이듯 혼자 예배 드리는 것과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은 영적으로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