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시골에 살던 저의 기억이 자연스레 설교에 반영될 때가 있습니다. 전원의 추억이 있는 성도들은 ‘어린 시절의 고향이 생각난다’ 말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의 시내와 산, 그리고 고기잡이하던 냇가, 모래톱과 멱감던 수문 거리가 더욱 기억됩니다.
우리가 고향을 그리는 것처럼, 온 인류에게도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에덴”은 그 어원상, 환희와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은 가장 큰 기쁨이 넘치고, 아름답고, 풍성하고, 조화로우며, 하나님이 임하여 계시던 우리 인류의 고향입니다. 에덴은 목가적 이상향이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낙원으로 심미적 찬탄과 경배를 자아내는 아름다움의 끝판왕입니다.
에덴동산은 신학적인 묵상의 출발점이며, 신자의 사회ㆍ정치적인 성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최초의 인간 환경입니다. 민주주의의 이론적인 기안자인 토마스 홉스, 존 로크나 장 자끄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모두 인류 최초의 상태인 “자연 상태”(the state of nature)를 그들의 사회이론과 정치이론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보았고, 안전을 위하여 자기 권리를 이양하여 국가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를 자연 상태라고 보았는데, 이는 개인 “각자가 완전한 평등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실수할 수 있으므로,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정부를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루소(J.J. Rousseau, 1712-1778)의 자연 상태는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목가적 상태”이므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생활로 옮겨가며 순수한 자기애를 잃고 불평등과 예속이라는 문화 속으로 타락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통한 국가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사회계약론자들의 자연 상태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원시 공산사회는 그들의 사회ㆍ정치사상을 시작하는 이야기(narrative)의 출발점입니다. 성경적 정치신학도 에덴에서 출발합니다. 홉스보다 약 3,000년 전에, 모세는 자연 상태에 준하는 “에덴동산”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합니다. 그 동산은 인류 최초의 양친이 죄짓기 전에 살던 곳이며, 하나님, 인간과 동식물이 공존하던 터전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아담과 이브가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룬 장소입니다. 가정이라는 제도가 설립된 곳이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사람으로 채우고, 온 세상을 에덴으로 만들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이상적 모형(ideal type)이었습니다. 그 동산에는 많은 동물과 식물이 있었으며, 비손, 기혼, 힛데겔과 유브라데와 같은 4강의 근원이 있었습니다.
에덴은 모든 관계의 조화로운 원형적 특성을 가진 왕국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조화, 인간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인간과 동행하였으며,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에덴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인간공동체의 원형적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관계와 조화가 파괴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부부는 부모가 되기도 전에 타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동쪽으로 쫓겨났습니다. 인류는 그때 이후로, 에덴의 동쪽에서 서편의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인간은 고향을 잃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홍수 이후 에덴은 땅속에 묻혔으며, 하나님이 이루실 새 에덴만이 소망으로 남아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