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통독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본서는 ‘렉시오 디비나 콘티누아’(Lectio Divina Continua : 성경 전체, 연속 읽기)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성경 66권이 이러한 순서로 되어 있는 이유를 물으며 통독하는 방식으로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을 한 흐름으로, 한 호흡으로 읽어 나가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출발하여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 나라의 원형에서 마침내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통독합니다. 이 땅에 창조의 순리와 원형대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여정들이 성경 66권의 흐름에 따라 펼쳐집니다. 하나님은 줄곧 일관되게 그분의 백성들을 불러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예배 공동체!’ 우리는 성경을 통해 부르심에 반응하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행착오와 불순종, 돌이킴과 순종들을 묵상하면서 지금, 여기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게 됩니다.
김병삼 & 배윤주 – 하나님의 음성
사랑은 기독교 윤리의 대강령입니다. 물론 기독교가 주장하는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해 죄인을 구원해 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이 사랑을 받는 동시에 이 사랑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대속의 피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를 먼저 사랑하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하나님 안에 근본을 가지고 나타나서 피조물에게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존재 위치는 은혜 왕국, 곧 그리스도 왕국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위치에서 우리가 일상의 생활 목표를 세우고 나아갈 때 그 삶을 그리스도께서 지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 왕국,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상이 우리를 명확히 지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현실 생활의 진행과 또한 세계와 사회와 인류와 인간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임덕규 – 로마서 강해 5
누가복음에는 예수께 기름을 붓고 자기의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씻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여인은 예수께서 한 지역 종교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께 부으려고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져온다. 식사 자리를 마련한 지도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면서 이 여자가 ‘죄인’이라며 예수가 정말 선지자라면 이 여자에 대해 틀림없이 알 것이므로 추측건대 이 여자가 자기를 만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이런 생각에 대해 비유로 답변하시고 뒤이어 이 여자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포하신다. 이 사실은 예수와 함께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 동요를 일으키는데 복음서 저자는 우리에게 ‘함께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라고 전한다.
스탠리 E. 포터 & 브라이언 다이어 – 신약 기독론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