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배할 때와 교회 밖을 나왔을 때가 다른 적이 얼마나 많은가? 내 믿음의 고백이 있는 자리와 내 삶의 모습이 다를 때가 너무도 많다. 신앙은 산 위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서 지켜 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삶의 현장, 바로 광야를 지나며 지키는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Grace Community Church)에서 밴쿠버 지역에 6곳의 분립 교회와 한국에 1곳의 교회를 개척한 박신일 목사는 올해 초 민수기 설교를 마탕으로 책 <평생의 순례자>를 펴냈다. 그런데 왜, 민수기일까.
저자는 "믿음의 고민을 가지고 순례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민수기는 선물과 같은 책"이라며 "신앙인에게는 영적으로 주님을 찾아가는 귀소본능이 장착돼 있다. 민수기가 우리의 흔들리는 영성을 붙들어 주는 작은 힘이 되길 소망한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박신일 목사는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감신대(B.Th.)와 한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1996년 유학을 떠난 밴쿠버에서 7년 후인 2003년 그레이스 한인교회를 개척해 올해 20년째를 맞았다.
그레이스 한인교회는 캐나다 복음주의 교단인 EFCC(Evangelical Free Church of Canada)에 소속돼 있으며, 박 목사는 복음 중심 목회,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목회, 선교와 전도 지향적인 목회 등을 추구하고 있다. 박 목사와의 인터뷰를 두 차례로 나눠 게재한다.
민수기, 잘 안 다루지만 복음 있어
쓰러지고 넘어지는 인간들 이야기
보수 신학, 너무 높은 기준 말하고
자유 신학, 죄 용납하나 대안 없어
-요한계시록 성경공부 교재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 <예수님과 승리하는 삶>을 펴내신 후, 이번에는 민수기입니다. 설교로는 모르겠지만, 책으로는 이례적 선택인데요.
"저는 '복음 중심의 목회'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으로 보면서, 묵상에 좋은 스승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있는 분들도 만났지만, 책을 통해 영국 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묵상을 즐거워하는 목회를 하게 됐어요.
한국에서 서른 살 정도까지 부교역자로 강남 혜성교회라는 곳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 당시 외무부 차관님이 다니셨어요. 외국 대사들 모임이 있고 대사 부인 모임이 각각 있는데, 부부가 함께 모이는 수련회 1박 2일 강사로 저를 초청하셨어요. 끝난 후 인연이 되어 대사 부인들 정기모임 강사를 부탁하셨어요.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5년 정도 강사를 했어요. 그분들은 정치나 역사 등에 대해 저보다 많이 아셨기에, 제가 이분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성경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성경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을 깨달아야 신약이 분명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사실 한 권의 책이니까요. 그래서 한 권씩 공부하면서 3년 동안 만든 교재가 있습니다. 수요일마다 가르쳤던 인물별 성경공부입니다. 교인들에게 가장 많은 은혜를 끼친 공부 중 하나였습니다. 분량이 많아 어떻게 낼지 고민인데, 그중 하나인 야곱을 꺼낸 것이 <은혜가 걸어오다>입니다. 다음으로 민수기 설교를 모아 <평생의 순례자>를 냈습니다.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잘 다루지 않는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복음이 감춰져 있습니다. 너무 거룩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쓰러지고 넘어지는 이야기,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 인간사 아닙니까? 지금 보수적인 분들은 너무 높은 기준만 이야기하고, 자유주의 신학에 빠진 분들은 인간의 죄성을 용납하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거룩에 대한 열망이 없죠.
복음은 존 스토트가 말한 것처럼 '더블 리슨(double listen)',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세상의 신음 소리를 들을 때,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합니다. 묵상도 그렇게 하고요.
이런 책들을 설교하는 경우가 드물다지만, 그러다 보니 저는 구약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구약은 인간이 넘어지는 역사이고, 신약은 그 넘어짐의 해답입니다. 성경 인물 한 명을 다루면, 교인들이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야곱은 만만하잖아요(웃음). 제목을 '순례자'라고 썼지만, 주님이 딱 붙드시고 신실하게 끝까지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우리 신앙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감사와 섭섭함 사이에 영성이 있다'는 말이 인상적인데, 의미가 무엇인지 딱 잡히진 않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교수님의 비슷한 표현을 제가 우리 식으로 푼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이 내 뜻대로 해 주시지 않는다는 섭섭함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쪽을 생각하면 기쁘지만, 우리 인생에서 누구나 미처 다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내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고, 기도 응답이 원하는 대로 안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모든 신앙에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이에 있는 거리, 차이를 메꿔주는 것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섭섭한 하나님을 감사의 하나님으로 끌어가는 것입니다.
맥그래스 교수님이 <내 평생에 가는 길(원제 The Journey)>이라는 책을 썼는데, 인간의 이 양면성 사이에 영성이 존재할 공간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영성이 필요한 겁니다. 섭섭함이라는 것이 고백은 하지 않지만, 다 가슴에 있다는 겁니다."
▲박신일 목사는 책에서 "신앙인들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고백이 있다. 하나는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표현은 잘 하지 않지만 다들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는 말, '하나님 섭섭합니다'"라며 "감사의 고백은 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섭섭함이 있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조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성이다. 섭섭함을 감사로 승화시키는 것이 영성"이라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
목회자, 철학과 사상 갖는 것 중요
성경에 담긴 사상과 정신 정리해야
인문학 필요하나 설교는 강의 아냐
시대 이해 도구, 진리는 변치 않아
-신학을 하기 전 혹시 무슨 공부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때 인문학도 공부합니다. 신학교 다닐 때 소설과 시를 많이 봤습니다. 외가 쪽이 작가 집안이기도 합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철학과 사상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이 복음도, 세상적 용어로는 기독교라고 하는 도(道)거든요. 십자가의 도.
목회자가 3년 동안 설교했는데, 교인들이 '목사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같다'고 하면 철학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이 정리가 안 된 겁니다. 철학도 사상에 따라 일종의 학파가 있는 것처럼, 목회자도 성경을 다 읽었을 때 성경이 어떤 사상을 담고 있는지 정리해 봐야 하겠죠. 그런 사람의 설교는 3년, 10년 들어도 한결같은 정신이 들어있죠.
그래서 저는 목회자들이 철학을 깊이는 공부하지 않더라도, 중세까지의 철학은 기독교와 함께 움직였으니 철학이 신학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 등 기본적인 내용들을 알고 있길 바랍니다.
저도 세상을 잘 모르지만, 기독교 서적이 아닌 일반 서적들을 통해 세상이 갖고 있는 사상과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데 관심이 많죠. 예술도 좋아하고, 시집은 평생 읽고 있고, 인문학 관점의 책도 수시로 보는 편입니다."
-어떤 분들은 설교나 책에 그런 인문학이나 세상의 지식들을 많이 인용하던데, 목사님 책에는 그런 부분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성경적 해답이나 거룩의 소망이 약하니, 인문학적 내용들을 갖다 써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들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설교가 대학 강의가 돼선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문학은 갖고 있어야 할 지식이지, 전파할 내용은 아닙니다."
▲평생의 순례자(박신일 | 두란노 | 332쪽 | 20,000원). |
-적절히 설교에 녹여내는 부분은 필요할까요.
"철학으로 말하자면, 중세 시대까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어요.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은 계몽주의 다음이에요. 계몽주의가 등장했을 때 모든 예술이 바뀝니다. 기독 철학자 이야기인데, 계몽주의 시대 때는 하나님이 안 계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어떨까요? 그 철학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설교할 순 없습니다. 시대를 이해하는 도구일 뿐이죠. 다만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약하다는 건 알고 있어야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그렇더라도 진리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나 내용들을 알고 설교하는 것과 모르고 설교하는 것은 똑같은 성경을 설교하더라도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녹여낸다는 말이 아주 좋은 말 같습니다. 그렇게 이 사람들, 이 세대와 소통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신학을 했든, 세상 학문을 공부하고 직업을 갖고 있다 신학을 했든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했든, 교인들과 얼만큼 소통하고자 하는지, 교인들의 아픔을 얼만큼 알고자 하는지, 세상을 이해하는 노력을 얼만큼 하는지 등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