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바벨론 제국의 비신화화를 위한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선지자가 활동하던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 예언(1-39장)과 유대왕국이 멸망한 이후 포로 시대에 대한 위로와 소망의 예언(40-66)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야 40-66장의 저작설 논쟁은 베르나르드 둠(Bernhard Duhm, 1847-1928) 이래 한 세기 이상 진행되어왔지만, 최근에는 이사야 전체의 통일성과 동일인 저작설을 지지하는 보수적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사야서의 후반부를 대할 때, 이제는 멸망한 나라를 재건하려는 “국가 재건”(nation-rebuilding), 다시 말하면 “두 번째 출애굽”의 목소리를 이 부분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사야 40장 이후의 본문은 국가의 멸망 이후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거두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위로와 도전을 제공한다. 우리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대왕국이 무너진 기원전 586년 이후에 해당하는 시대를 향해 주어진, 이사야의 국제관계에 관한 조언과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살피도록 하자.
1. 바벨론을 향한 이사야의 비신화화.
존 골딩게이(John Goldingay)는 이사야 39장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추방될 유다의 미래에 대한 서론적 예언이며, 40-55장은 바벨론 유수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예언이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의 예언은 바벨론이 하나님의 유대왕국에 대한 징계의 채찍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의 전횡적인 권세를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 표현할 뿐이다. 이사야에 의하여 바벨론 제국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非神話化)되고 있다. 그 비신화화의 과정은 이미 바벨론이 역사상의 제국으로 등장하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예언을 통해 주어졌다.
아하스 시대 유대왕국이 앗시리아 제국과 동맹을 유지하던 시절에도, 이사야는 국제정치에 대한 언급을 지속하였다. 당시 제국에 대한 경고는 현존하는 앗시리아만 아니라, 이사야 13-23장에 걸쳐 이미 주변 모든 나라를 심판의 대상으로 거론한다. 바벨론에 대한 본격적인 징계의 메시지는 13장에서 시작된다. 아직 역사의 전면에 제국으로 등장하지 않은 바벨론을 향하여 이사야는 메대와 바사의 군대들을 통하여 심판할 것임을 예언한다. 바벨론을 향한 “여호와의 날,” 즉 하나님의 임재에 의한 심판의 날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여호와의 날은 갈대아 사람들의 수도 바벨론에 임하므로, 영광의 성이 수치의 장소가 된다고 한다. 이 예언을 예언으로 받는다면, 타락한 선민을 심판하는 멸망의 도구 바벨론은 그 나라가 중근동의 패권국으로 등장하기도 전에 그 종말이 정해진 상황이 된다. 이사야 21장 1-9절에서도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국가로 등장할 엘람과 메대의 동맹을 거론한다. 따라서 바벨론 제국을 신화화하거나 벨 혹은 마르둑이나 느보 혹은 나부와 같은 바벨론의 우상숭배는 허무한 것일 뿐이다. 앗시리아의 신 “앗술”(Assur)을 징계하신 분이 여호와이신 것처럼, 바벨론의 벨과 느보를 무력화시킨 분도 여호와이시다.
그러므로 앗시리아 제국에 저항하여 일어난 중근동의 여러 나라와 바벨론이 지금은 서로 우호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이후에는 바벨론 제국이 중근동의 패자가 되며, 바벨론이 유다를 결국 멸망시킬 것임을 선언한다. 따라서 지금의 우방을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의뢰하는 것은 결국 미래의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실용주의적 국제관계를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에게 미리 주지시키고 있다. 바벨론의 리더십에 합세함으로 반앗시리아 정책을 펴는 것도 여호와에 대한 언약적 신뢰를 상실한다면 결국 궁극적인 외교적 안전망은 아니라는 것이다(사 28-31장, 36-39장, 왕하 18-20). 이는 국제정치의 현대적인 격언,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단지 국제정치의 목적으로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명제를 기억나게 한다. 이사야는 언약 국가인 유대왕국에 관한 한, 여호와 이외에 의지할 존재가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2. 국제관계 속에서의 여호와의 탁월성.
국제관계 속에서 언약의 종주권자인 여호와의 위상은 그분의 ‘탁월성에 대한 칭송’ (Aretalogy)으로 표현되어 있다. 유대왕국의 멸망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봉신국이 바벨론이라는 제국에 의하여 붕괴된 사건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유일한 봉신국을 멸망시킨 것은 종주권자이신 여호와의 실패로 간주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사야 40-55장의 주된 가르침은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과 열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우상과 열방의 신들을 무효화시키는 주권자라는 것이다. 이사야의 두 번째 부분에서 반복되는 대표적인 표현은 하나님의 탁월성을 입증하는 “나는 여호와니라”(ani YHWH)는 표현인데, 이 구절은 이사야에서 총 22번 등장하는 중에, 이사야의 두 번째 부분(40-55장)에서는 18번(41:4, 13, 17, 42:6, 8, 43:3, 15, 45:3, 5, 6, 7, 8, 18, 19, 21, 48:17, 49:23, 26) 그리고 같은 의미로서 “나는 여호와니라”(anoki YHWH)를 가진 유사한 표현까지 합하면 20회(43:11, 44:24)에 이른다. 이러한 표현은 이사야 첫 번째 부분인 1-39장에서 단 한 번(27:3), 세 번째 부분인 56-66장에서 세 번(60:16, 22, 61:8)이 전부이다.
이 표현의 가장 중심된 의미는 비교 불가능한 하나님의 탁월성이다. 그 하나님은 이사야의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되는 이사야 40:10에서 “주 여호와”(the Sovereign LORD)라는 명칭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이시다. 팀 벌클리(Tim Bulkeley)는 “주 여호와”라는 명칭이 1-39장의 맥락에서 이스라엘과 열방에서 활동하시는 주권자였다면, 이제 40-55장의 맥락 안에서는 열방의 신들 위에 군림하는 탁월한 존재로서 국제적인 차원으로 ‘더욱 확장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명칭에 대한 극적 표현이 “나 여호와”라는 말이다. 이사야 40장으로부터 시작된 바벨론 제국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은 그러므로 유일한 창조주이며, 열방을 통의 한 방울 물같이 여기시며, 유다를 그 포로 상황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더욱이 이 시대의 여호와는 만신전(萬神殿, pantheon)에 진열된 제국의 어떤 신과 비교할 수 없는 “주 여호와”로서 자신을 스스로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 “아니 야훼” 혹은 더 고대 형태의 “아노키 야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자존적인 탁월성에 대한 칭송(aretalogy)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이사야 1-39장에서 소개되던 이스라엘의 주권적 여호와는 이제 보편적 주권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첫 부분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었으나, 40장 이후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며, 온 역사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다른 신들과 비교가 불가능한 탁월한 하나님이시다. 41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시작을 알린다. 42장의 표현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묘사에 이어, 하나님이 세상을 유지, 섭리하신다(42:5). 45장은 하나님의 역사를 주관하시되 기름 부은 자인 고레스를 세워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놀라운 국제정치의 모략가이다. 그 하나님은 열방의 국제정치적 변동과 국제정치의 흥망성쇠를 담당하시는 두려운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탁월성에 대한 자신의 표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다른 신에 대한 우월적 자기주장(self-assertion)으로 가득한 모습을 통해서 계시된다.
이사야의 둘째 부분인 40-55장은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시고 다스리는 봉신국 유대왕국이 사라지고 바벨론 제국이 통치하는 “묵시적 시대”(apocalyptic period)를 배경으로 한다. 이는 선지자를 통한 개혁의 가능성이 있는 “선지자적 시대”(prophetic period)와 대조를 이룬다. 이 묵시의 시대는 하나님 백성의 생존이 사람이 아닌 오직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통해 성취된다는 종말론적 기대로 특징지어진다. 이사야 40-55장 전체에서 특히 40-48장은 바벨론의 통치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려 개입하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왕의 도래를 알리며, 49-55장은 페르시아의 승리에 이어지는 예루살렘으로의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대이다. 묵시적 시대의 구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에게서 온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세우신 목자 고레스는 강포한 바벨론을 정벌하는 여호와의 종이며, 이어서 출현하는 여호와의 종은 고레스처럼 유대민족을 위로하는 메시야의 도래를 예고한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이집트를 지배하심으로 제사장 나라를 일으킨 것처럼, 2차 출애굽인 바벨론 유수로부터의 회복은 탁월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기적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메대와 바사의 군대는 기적적으로 바벨론을 일시에 붕괴시켰다. 고레스왕 원년은 페르시아의 왕의 보호와 명령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