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사는 곳이 달라도, 함께 부르고 있으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나게 해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피부 색깔이 달라도, 함께 부르고 있으면 우리의 뿌리가 어디로부터 인지를 기억나게 해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아리랑입니다. 이 아리랑은, 온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에게 우리가 한 민족인 것을 기억나게 해주는 그런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분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헬라 말로, 본래 온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민족적 정서와 관습과 규범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유대인 '디아스포라'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엔 유대인에만 국한하지 아니하고 어떤 특정한 민족 집단이 자의나 타의로 자신이 살던 '본토'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디아스포라'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의 원 주인 격인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전 세계 100여 개국에 불과한데 반해,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전 세계 175여 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중심엔 조국의 슬픈 역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다룬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 방송은 왜 중앙아시아 지역에 '고려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또 어떻게 쿠바와 같이 먼 곳에 '꼬레아노'라 불리는 '애니깽'의 후예들이 살게 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가난한 민초들이었습니다. 궁핍과 일제의 수탈, 그리고 독립 운동을 위해 디아스포라가 되었고,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은 뒤에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멕시코) 현지인을 지구상 5-6등의 노예라 칭하는데 한인은 그 밑인 7등 노예가 되어...무릎을 꿇리고 구타를 당하여 차마 못볼 정형에 통탄이라 하였더라..." 1906년 7월 29일자 황성신문은 당시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농노가 되 버린 한인들의 참상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일당은 당시 7센트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해방된 조국을 꿈꾸며 일했고, 4년 뒤에는 지금 돈으로 약 2백6십만 불이 넘는 거액을 독립자금으로 쾌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조국을 그리워했고, 그들의 아리랑은 단순히 '한'을 노래하는 아리랑이 아닌 조국을 해방시키고 다시 세워가는 아리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드리고 나서야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영웅적인 몇 사람의 지도력만으로 정말 대한민국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조국의 회복을 그리워하며 세계 각지에서 간절하게 아리랑을 불렀던 수 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통하여 이런 나라가 세워진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천국을 그리워하며 함께 불러야 할 노래는 어떤 노래일까요? 함께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