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의 아내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비망록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월 26일 새벽 3시 맥아더 장군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이르니 날이 밝으면,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부관에게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 국민이 죽어가는데, 그렇게 잠이 오면 잘 주무시오"라고 했고, 놀란 부관이 맥아더 장군을 바꿔주자, "오늘 이 사태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당신 나라가 관심과 성의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오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라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의 장면 주미대사를 불러, "도대체 지원하기로 한 2000만 달러의 무기는 어떻게 된 것이오, 트루먼 대통령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서 이야기 하시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에, 대사는 미국무성 고위관리들과 접촉을 하고, 유엔 안보리 긴급이사회에 출석해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트루먼 대통령을 26일 오후 3시 30분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분초를 다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호소문을 들고, 눈물 어린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는 미군들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우리가 할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지금도 죽기를 각오하고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수많은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대사의 연설 후, 맥아더 장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전용기를 타고 수원에 날아왔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은 마침내 수많은 병력손실을 각오해야만 하는 지상군 파견을 재가하게 됩니다. 이 일은 전쟁 발발 6일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미군의 신속한 참전 결정이 있었기에 없어질 뻔한 나라가 살아남게 된 것이었습니다.
6.25는 지금 80대 시니어 분들 외에 대부분의 한인들에게는 먼 이야기입니다. 현재 40대 이상 되시는 분들에게는 단지 교과서를 통해 접한 역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무서움, 나라의 중요성, 국방의 중요성, 그리고 외교의 중요성, 대한민국과 미국의 동맹의 중요성, 그리고 신앙과 기도의 중요성,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에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가치와 신념이 없었다면, 미국은 그렇게 큰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기독교 정치인들, 크리스천 대통령의 발 빠른 판단,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기독교라면 치를 떠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자유와 평등, 인권이 사라진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몇몇 정치인들, 역사학자들은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주요한 지역이라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바라고 전쟁에 참여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까지 한반도는 투자가치가 전혀 없는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나라였습니다. 국제정세를 따져 볼 때, 구소련과 미국이 탐낼 만한 땅이었는지는 몰라도 수만명의 군인을 희생시킬 만큼 가치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어려운 국가를 돕기 원했던 미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전쟁에 지원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을 자랑스러워 하고, 감사할 뿐 아니라, 축복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켜진 우리 고국도 사랑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6.25를 잊지 맙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적 사상으로 다시 위협받고 있는 미국과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