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우리와 같은 이민자로서 세상에 같이 섞여 사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삽니다. 유대인의 복장과 모습, 언어나 음식, 회당에서의 예배드림 등으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전체 인구의 2.2% 밖에 되지 않는 그들의 휴일이 미국의 휴일이 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렇게 민족적 정체성을 지켜도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의 정체성은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에녹의 시대나 노아의 시대는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에녹은 그런 세상에서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였고,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 짓는 일을 선택하며 죄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기 좋은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척박한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 것이나 조카 롯과의 분쟁 때에 오히려 목축에 더 좋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양보한 것도 믿음의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믿음의 정체성을 가지려면 본향,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둠으로 어둠을 이길 수 없고, 미움으로 미움을 이길 수 없듯이 세상은 세상으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돈을 다 가져도 만족함이 없고, 세상의 권력을 다 가져도 안전하지 않으며 세상의 쾌락을 다 채운다 해도 끝이 없습니다. 세상보다 더 큰 것이 우리의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 본향을 바라보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면 세상을 이기는 분명한 정체성이 생겨납니다.
역사를 통해 서구 기독교 확장 과정을 살펴보면,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 이전 단계를 '전기 기독교 시대',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인정 후부터 20세기까지를 '기독교 왕국시대', 그리고 오늘날을 '후기 기독교 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기 기독교 시대에는 엄청난 핍박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길 자청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확실한 믿음의 정체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으면서도 정확하게 세금 내는 일을 거부하지 않았고, 원형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분명한 믿음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증거 했습니다. 나그네와 같이 속히 지나가는 세상에서 천국 본향에 대한 확신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모든 것을 이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실한 정체성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기독교 왕국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교회는 세상에서 기득권을 갖게 되었고, 본향을 바라보기 보다는 세상의 유익을 좇으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지금의 후기 기독교 시대에는 세상이 교회에서 얻는 것들보다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기에 교회를 떠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말세를 사는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유혹해도 천국 본향을 똑바로 바라보고 믿음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므로 승리하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