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이슈 핵안보와 반도체법?
이전 정권 실기 만회 노력 할애
정상국가로서 핵개발 불가능해
이전 정권 종북·종중 탓 약화된
한미동맹 강화 외엔, 방법 없어
文, 반도체 공급망 확보도 손놔
尹, 후속대책 외에 방법이 없어
충분한 현실성, 적절한 외교력
지난 달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일정 중 가장 주안점을 둔 사안은 핵안보와 반도체법 이슈이다. 이 두 사안이 우리의 생존과 경제적 번영을 결정짓는 핵심 외교 안건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의미로 이번 방미 일정은 현 정권이 지닌 외교력의 최대 시험대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핵안보와 반도체법 이슈, 이 두 사안 모두 한국 정치 지도자와 국민들이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안건들이다. 핵안보는 미국과 북한 사이 군사적 긴장관계에 따라, 반도체법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에 따라 한국 정부나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 이 낭패스러운 상황이 감정적으로 쉽게 납득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이 결국 타인의 싸움판 위에서 놀아나는 팻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한국인들 입장에서 절대 망각할 수 없는 고질적 트라우마를 일깨운다. 한국전쟁이 그런 식으로 발발했기 때문이다.
우선 핵안보 문제를 살펴보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1962년 북한이 영변에 핵 연구단지를 조성한 이후 집권한 대한민국 대통령 모두는 핵안보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손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핵안보 문제에서 주도적인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은 곧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한다는 뜻이나 다름 없는데, 이것은 미국의 보호와 감시를 받던 동맹국이자 정상국가로서는 택할 수 없는 선택지다.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독자적 핵개발과 핵보유는 곧 모든 외교관계 및 국제 교역 소멸, 그리고 그에 뒤따르는 처절한 민생 파탄을 감내해야 하는 일로서, 국민들 모두 죽어나가도 군사력과 자존심만은 챙기겠다는 군국주의 독재자가 아니면 결코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리비아, 이란, 북한의 핵무장 시도가 그 국민들의 민생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렸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는 직접적인 군사적 방책으로 자체 핵무장이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 보유, 핵추진 잠수함 보유와 같은 방안을 추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토록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이 세 가지 핵무장 방안과 관련하여 가시적 효과를 내는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처럼 핵안보와 관련하여 미국에 종속된 외교안보 현실이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케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진보 계열 정치 지도자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세 사람은 우리 정부가 핵안보 문제에서 주도적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한미동맹이 아니라 남북 직접외교 및 협상이라는 묘책을 내세웠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나 문화교류를 동반한 이런 외교적 방안은 잠시 국민들의 마음에 서린 대미 종속의 울분을 해소시킬 수는 있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오히려 우리 생존을 더욱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접근법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애초 북한은 안보와 관련해 절대 신뢰할 수 없는 협상 상대였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이라는 독아(毒牙)를 내보이는 사갈(蛇蝎)과 같은 독재자의 나라였던 것이다.
이미 실패가 확정된 이 방안을, 그것도 보수 정권의 지도자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북한 핵위협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책은 다소간 굴종은 피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존과 안보를 위해 한미동맹의 힘에 다시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의회 연설에서 한국전쟁 이래 이어져온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거듭 강조하고, 백악관에서는 미국의 만찬 문화에 한껏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에 핵을 사용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한미군과 한국 내에 거주하는 10만여 미국 시민들의 존재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5월 20일 G7 정상회의 친교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기시다 총리의 배려로 바이든 대통령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대통령실 |
일단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 세계의 공적이 된다는 뜻이고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핵무기에 희생되는 인원 가운데 다수의 주한미군과 미국 시민들이 포함된다면 멸망은 더욱 확실한 운명으로 다가온다.
즉 한미동맹의 최대 이점 가운데 하나는 이 동맹관계 덕분에 한반도 내에 일정 규모의 미군이 상시 주둔한다는 점, 그리고 미국과의 활발한 경제적 교역과 민간교류 덕분에 다수의 미국 시민들이 항상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에 거주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인들과 미국 시민들을 공동의 생존 공동체로 묶어내는 중요한 기반으로서 다른 어떤 수단보다도 강력한 핵억지 방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국과 미국의 경제, 문화, 민간교류를 활성화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핵억지 방안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에서 핵안보와 관련해 바로 여기에 주안점을 두었다.
물론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 보유와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단지 핵안보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인 이유로 꼭 필요한 일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동의 없이 이를 추진해서 상실하게 될 한미동맹의 커다란 외교안보적 자산을 생각해 본다면, 미국 정가나 군부에서 이 요구 사항을 바라지 않는데 대통령이 굳이 미국 측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핵연료 재처리나 핵잠수함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
상대방이 들어줄 만한 제시안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중 핵안보와 관련해 기본에 충실한 외교활동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정권의 과도한 친중 행보로 약화된 한미동맹의 기반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 그것이 곧 북한의 핵위협에 대비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방책인 것이다.
다음으로 반도체법 문제를 살펴보면, 이번 방미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이 가시적으로 얻어낸 성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야당을 중심으로 진보 계열 정치인들이 이 점을 집중 공략하면서 '실속 없는 굴종 외교의 대표적 사례'라고 한목소리로 맹공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법 내용 가운데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독소조항들이 존재한다. 미국 내 생산공장에서 산출된 이익 중 초과이익분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는 것, 그리고 미 국방부와 국가안보기관이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에 직접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는 일 등이다.
반도체 공급망 확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 미국 정재계의 역점 시책 가운데 하나로, 미국 입장에서 양보가 불가능한 사안이다. 이 시책은 당연하게도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정치구호는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을 뿐,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치 지도자들과 기업가들 입장에서는 언제든 반드시 본격화되었을 정책이었다.
현재 반도체법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가진 문제점은 반도체 공급망 이전과 관련된 중요한 흐름에서 시기를 놓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이전 정권의 심각한 직무유기 때문에 발생했다.
▲21일 한미일 정상회담 모습. ⓒ대통령실 |
반도체 공급망 재편 조짐은 이미 2018년 미중 무역갈등이 시작되면서 나타나고 있었다. 애초 미중 무역갈등 시작 자체가 화웨이의 약진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기술 패권 도전에 의한 것이었던 만큼, 첨단산업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여기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 일본과 대만이다. 일본은 1980년대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제패했던 이력과 압도적으로 미국에 유화적인 외교 스탠스를 활용해, 현재 한국과 대만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을 일본 내로 이전시키려 했고, 작년부터 TSMC 생산공장을 유치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대만은 일본보다 미국의 시책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현재 대만 침공을 획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나라의 패망이 올지 모를 급박한 상황에서 유일한 안보의 구명줄인 미국 방침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계산에 따라, 대만 정부와 TSMC는 미국의 독소조항을 전부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과 대만은 자신들 편에서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누리려 기민하게 대처한 반면, 한국은 친중을 넘어 종중(從中)의 지경까지 나아간 이전 정권 때문에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그저 관망하고만 있었다.
게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위시한 진보 정권 지도부는 2019년 일본과 무역 분쟁이 일어나자 이를 국민감정을 부추기는 선동의 관점으로 접근했을 뿐, 이면에 도사린 반도체 패권과 관련된 일본의 계획을 간파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전 정권의 정치 모략 가운데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재판과 구속 건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일정 부분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미국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실기(失期)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현지 반도체 생산시설 폐쇄와 철수, 미국 생산기지 구축에 대한 여러 결정들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국내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한 템포 늦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방미 직전 반도체 외교와 관련해 거의 패전처리 투수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었다. 일본은 미일 동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반도체 공급망 일부분을 일본 내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상황이고, 대만은 사활을 걸고 미국의 방침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현재의 손실을 미래의 이익으로 전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한국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만 민족 자주와 자존심 운운하는 이전 정권의 여러 허술한 정치공작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하고 힘겹게 일본과 대만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윤 대통령은 반도체법과 관련해 일본이나 대만과 비교했을 때 미국에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후발주자의 처지였고, 이에 관해 별 말없이 정세를 관찰하고 후속 대책을 모색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 정재계의 신경을 거스르는 요구를 내놓기보다 빠르게 시류에 편승하고, 그 가운데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을 찾아보는 것이 정부 수반으로서 가장 적절한 태도였던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답답해 보일지 모르나, 그 답답함은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다. 결국 한미동맹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중국에 아부했던 이전 정권의 정치 모략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고 지지를 몰아줬던 우리의 무지함이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낭패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위축되지 않고 한미동맹의 확고함을 보이려 애썼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는 폄하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방미 일정에서 핵안보 및 반도체법과 관련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적 대처는 어렵고 난처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재건이라는 우회적 방안을 통해 차후의 대응 기회를 모색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 두 사안에 대해 지극히 단기적 시야를 가진 다수 대중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처를 비난하지만, 그 답답한 대응은 결국 이전 정권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며 자행한 연속적인 정책 오류와 실기를 만회하기 위한 신중함을 담아낸 것이다.
이번 방미를 전후해 이루어진 대통령 방일과 한일관계 개선 시도, 지소미아(GSOMIA) 정상화, 기시다 총리 방한 일정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태평양 질서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편승하고 있다는 신호를 미국 정계에 보여주려는 정치적 계산을 담아낸 조치들로 볼 수 있다.
한국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주도권이 주어져 있지 않은 사안, 그것도 지난 정권의 실책으로 주변국에 비해 대처가 늦은 열악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외교적 노력은 충분한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방미 일정은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 적절한 외교력을 보여준 무대였다고 평할 수 있다.
▲'토라(Torah)의 현대적 가치 : 복음 안에서 율법의 갱신과 완성'을 주제로 발제한 박욱주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크리스천투데이 |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