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식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Photo : 기독일보) 박동식 교수(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새해 첫날 혹은 새해 어느 한 날에는 LA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동문이 은사이신 서정운 총장님을 모시고 함께 예배드리고 새해를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총장님의 설교는 늘 언제나 사무엘상 7장 12절, "에벤에셀의 하나님"이다. 신대원 재학시절부터 개강예배, 종강예배 때 늘 언제나 이 본문으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말씀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존경하는 스승이 계신다는 것은 그 스승으로부터 배운 사람으로서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제자들이 총장님을 존경할 것이다. 학생들과 자주 축구도 하시면서 권위도 내세우지 않으시고 늘 온화하게 학생들 이름 불러 가며 어울리셨다.

이제까지 강의 들으면서 눈물 흘린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대학교 4학년 때 존경하던 교수님이 학교를 떠나시면서 하셨던 <철학적 인간학> 수업 마지막 니체 강의를 들으면서였고, 또 한 번은 신대원 때 서 총장님의 선교학 수업을 들으면서였다. 조직신학을 공부하고자 했던 학생이 선교학 수업에 눈물을 흘렸다니, 아이러니하지만 그랬었다. 총장님을 보면서 리더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삶으로 배운다. 몇 해 만에 다시 모여보니 존경하는 스승이 계신다는 것이 다시금 감사하다.

다윗이 산성에 있고 블레셋의 요새가 베들레헴에 있을 때, 다윗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마시고 싶어한다. 그 물이 그리운 것이다. 그러자 세 용사,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가 블레셋 진영을 뚫고 가서 우물물을 길어 온다. 하지만 다윗은 마시지 않고, 그 물을 주님께 부어 드리면서, '하나님, 이 물을 제가 어찌 감히 마시겠습니까, 이것은 목숨을 걸고 다녀온 세 용사의 피가 아닙니까,' 한다(삼하 23:14-17).

그 물은 세 용사가 목숨 걸고 구해온 물이기에 다윗은 마시지 않는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목숨 걸고 구해왔는데 마신다? 어쩌면 바른 왕이 아닐 것이다. 그 물을 본 것만으로 좋았을 것이다. 그 물이 정말로 마시고 싶어도 고생한 부하들을 생각하면 마실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다윗은 그렇다고 그 물을 버리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께 부어 드린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목적과 성공을 위해 동역자들을 수단으로만 삼는 리더가 있다면 바른 리더가 아닐 것이다. 동역자들은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기계 부품이 아니다. 그들의 수고와 땀이 있기에 공동체가 움직이지 않는가. 그 수고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리더 자신도 언젠가는 기계 부품처럼 교체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존경받는 리더는 같이 하는 이를 존중할 줄 알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자신이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어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 아니겠는가.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다 무화과나무를 심고는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지만 찾지 못하였다. 포도원 지기에게 말한다. '3년을 와서 열매를 얻으려 했지만 못 얻었다. 찍어버려라. 땅만 버릴 수 있느냐.' 포도원 지기가 말한다.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제가 거름을 주고 보살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열매를 맺을 겁니다. 그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버리십시오'(눅 13:6-9) 한다.

포도원 주인의 태도는 철저히 실용주의적이다. 손익계산을 따져서 일을 처리한다. 하지만 포도원 지기는 그런 손익계산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지만,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에 대해 기다리고 인내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리더는 포도원 주인의 사고가 아닌 포도원 지기의 마음으로 공동체 식구들을 돌봐야 할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에 대해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리더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자가 아니라 마음을 돌보고 기다려 주는 자다.

어떤 사람이 양 100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으면, 99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찾아다닌다.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서 '잃은 양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기뻐해 달라'며 잔치를 벌인다. 잃은 양 비유다.

예수님은 그 비유를 통해 다음을 말씀하신다. '하늘에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눅 15:7). 더 큰 숫자인 99마리의 양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간절한 마음이 참된 리더의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말하는 것이지 싶다.

리더는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치 그 사람이 전부인 것처럼 대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 공동체에 억지로 참여할까.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존중해야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며 그 마음을 잡는 것이야말로 그의 전부를 얻는 것 아니겠는가.

진정한 리더가 부재한 시대에 존경하는 스승이 계신 것만도 큰 배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