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세워진 첫 한인교회인 울란바타르한인교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20일 감사예배를 드리고 장로·안수집사·권사 임직식을 가졌다. 특히 이 자리에는 첫 담임이었던 안교성 목사를 비롯해 현재 담임인 이상수 목사까지 그 동안 이 교회 담임을 맡았던 4명의 목사가 모두 자리에 모여 그 의미를 더했다.
이 밖에 주몽골한국대사관, 몽골한인회, 몽골상공인회, 다문화회, 대암이태준장학회, 몽골한인신문, KCBN, 제주몽골올레, 몽골국방대, 몽골의대, 후레정보통신대, 몽골국제대, 국제울란바타르대, 국제울란바타르대 간호대, UBMK, CBMC, UBTC, 감리교선교사회, 침례교선교사회, 성결교, 가까운 교회 등에서 많은 한인들이 참석했다.
울란바타르한인교회는 해외에 설립된 초교파, 교파 연합 교회이다. 독특한 것은 초대 담임부터 3대까지는 예장 통합 측 목사가 담임을 했고, 현 4대 담임은 감리교 목사가 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세워지는 이들의 교단 배경도 예장 통합(김안국 장로)과 합동(최상운 장로, 백종천 안수집사), 성결교(김영선 안수집사), 초교파(에스더·델게르체첵 권사) 등 다양했다.
또한 3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며 장로교 목사가 담임을 할 때는 한국 감리교 장로들이 힘 있게 교회를 섬겼고, 감리교 목사가 담임을 하고 있는 지금은 한국 장로교 장로들이 힘차게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한다.
교회의 초대 담임이자 현 장로교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인 안교성 목사는 한국의 한인교회 역사는 연합의 역사이며 교파를 초월한 복음의 통로였음을 역설했다.
몽골은 1920년대 200년이 넘는 청나라 지배의 시절을 끝내고 독립했다. 그러나 이후 70년 공산주의 시절을 보내며 사실상 교회와 기독교 복음을 찾아 보기 힘든 나라가 되었다. 1992년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개방된 후 몽골에 처음 세워진 한인교회가 아직까지 이런 복음의 연합 성격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몽골 울란바타르한인교회 역사는 몽골한인들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92년 몽골이 개방 된 이후 대사관 직원, 한인, 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만이 해외선교라고 인정받는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한인교회의 목회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 '몽골에 있는 우리 한인들이 양들이 아닙니까?'라는 말에 순종해 소망교회 부목사로 있던 안교성 목사가 한인교회 담임사역으로 몽골에 들어오게 됐다.
1992년 11월 15일 창립 후 교회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유일하게 외국으로 전화할 수 있는 전화기가 담임목사 집에 설치가 되어 몇 불씩 통화료를 내고 그리운 고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에 있는 한국 사람들도 외국인들도 배급을 받아야하던 시절, 한인교회의 주일 예배 이후 식사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고. 매 주일이 한인들과 유학생들이 모이는 잔치가 되었다고 교회 측은 전했다.
1994년 세브란스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몽골에 기념 병원인 '연세친선병원'이 설립됐다. 감리교 장로인 전의철 박사가 이 일을 맡아 몽골에 왔으며, 한인교회의 장로로 성실하게 섬겼다. 또한 독립운동을 하며 몽골까지 와서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가 된 이태준 박사의 공로를 발굴해, 훈장의 추서와 함께 몽골에 공원부지도 받아 한인들의 모든 행사의 중심인 이태준 기념 공원도 만들어지게 됐다.
2000년부터 2대 담임으로 섬기고 2016년 은퇴한 안광표 목사는 한인교회의 헌법과 정관도 분당 할렐루야교회와 수지 목양교회의 정관을 기초로 해 초교파적으로 잘 만들어 졌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악동뮤지션으로 잘 알려진 이찬혁 군과 이수현 양이 다니던 교회도 한인교회였으며, 한인들 자녀들이 어울리고 함께 배우는 장이 교회였다는 것이다.
몽골에 현지 사역을 하러 온 선교사들도 문화 적응과 현지 선교 준비를 한인교회에서 함께 섬기며 했고, 역대 몽골한인회 회장들도 한인교회를 다녀야 회장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인사회와 밀접하고 또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이후 몽골에 시작된 경제난으로 개발도상국에서 후진국으로 지위가 변동됐고,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봉쇄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몽골의 경제 상황은 말이 아닐 정도로 어려워 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회 경제적인 여파로 많지 않았던 한인 인구도 더 줄어 이제 삼분의 일 정도인 천 명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울란바타르한인교회 이상수 목사는 "이러한 상황에 한인교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며 "하지만 교파 연합의 정신과 믿음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복음에 터전을 잘 지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10월 3대 담임목사로 김봉춘 선교사가 헌신했고, 2020년 1월 이상수 목사가 청빙되어 한인교회에 부임했다. 하지만, 부임 이후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2년 간 교회는 제대로 모이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모이게 되었다.
성도들도 없는 예배당에서 영하 40도의 추위와 싸우며 이상수 목사는 SNS 응원 메시지를 작성하고, 온라인 새벽기도를 창세기부터 말씀 기도로 시작하는 등 1인 미디어 목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회는 비상체제로 부서장들이 모여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교회는 말씀 중심, 기도 중심으로 다시 신앙을 다지기 시작했다고.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교단, 교파의 이름을 가진 한인교회들도 생겨나며 처음 함께 모이던 모임이 교파별 모임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같이 초창기에 협력하던 선교사들은 현지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하느라 한인교회와 같이 협력할 기회들도 많이 적어졌다.
이상수 목사는 "몽골 내 거주하는 한들도 많이 줄어들어 예전 같지 않은 교회의 분위기에 마음 어려워하며 염려하는 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복음은 동토의 몽골에서 봄이면 초록의 초원이 움트듯 희망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한인교회의 30주년을 맞아 교회에 새롭게 선교적, 복음적 각오를 다지며 소중한 분들이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부름을 받았다"며 "이제 한인을 다시 품고, 교파 연합을 넘어, 민족과 이념을 넘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소명을 잘 감당 하는 몽골의 희망이 되는 처음 교회 '울란바타르 한인교회'가 든든히 자리 잡고 나가길 함께 기도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