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Photo :기독일보) 시애틀 영광교회 김병규 목사

우리가 가벼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얼마동안 징징대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바로 풀리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나 힘이 들면 남을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기대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소한 어려움은 기대면 풀립니다. 그런데 심각한 어려움에 남에게 기댈 수 없는 것은 중심의 문제 때문입니다. 내 중심은 누구도 대신 잡아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의 도움이 덧없어지면, 하나님이 중심을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 마다 중심을 다룰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과 직면하게 되면서 깨닫게 되듯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진실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심을 다룰 때는 사람을 기대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타인의 도움이 쓸데없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중심을 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을 기댈 때는 모르다가 중심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클래스가 달라지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승리와 공급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람에게 징징대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질문과 답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길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혀 힘들지 않다는 말은 무지하게 힘들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답을 몰라도, 답을 알아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답을 아는 대도 답답한 것은 가야할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생명을 살리는 사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과 사명의 길은 싸움의 길입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기다립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이때 누가 묻습니다. 힘들지 않냐고? 아니요?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 말로 대답을 하는 이유는 이때에 누구를 기대면 중심 잃고 쓰러지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오고 힘들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게 느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말도 사실은 무지 힘들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알지만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이기겠다는 것입니다. 사람 기대는 행동을 할 동안에는 중심의 변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중심의 진실은 하나님이 중심 될 때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클래스가 바뀌는 순간입니다. 앞에 고난이 있지만 순례의 길이요. 사명의 길이기에 가야 할 길이고, 이길 길이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누군가 사는 게 힘들지 않고 사역도 힘들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가야 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사명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말하기를 원합니다. 그게 깊이 있는 삶의 폭발력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