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주의 부각, PC 이념과 현실적 상황에서 출발
계층 이동 기회 막힌 시청자들 분노, 재벌들에 돌려
복수와 사회주의적 분배 결말 결합, 비현실적 혼종
예수의 "재물 나눠주라" 명령, 분배 아닌 예수 따름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jtbc 새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분석합니다. 산경(山景) 작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18일부터 방영되는 이 금토일 드라마에는 배우 송중기(윤현우, 진도준 1인 2역)를 비롯해 이성민(진양철), 신현빈(서민영), 윤제문(진영기), 김정난(손정래), 조한철(진동기), 박지현(모현민), 서재희(유지나), 김영재(진윤기), 정혜영(이해인), 김현(이필옥), 김신록(진화영), 김도현(최창제), 박혁권(오세현) 등이 대거 출연합니다. 

◈재벌의 이미지 변화: 백마 탄 왕자에서 만악의 원흉으로

금주부터 JTBC에서 방영되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2017년 공개돼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동명의 장르소설 원작 드라마로, 재벌과 환생이라는 자극적인 요소를 중심 소재로 삼는 작품이다. 송중기와 이성민 배우가 서사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두 주역을 맡는다. 서사나 캐스팅 양 측면에서 화제성이 만발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의 서사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흡입력이 있다. 재벌 가문인 순양가의 음습한 일들을 처리해주던 충복 윤현우(송중기)는 모종의 일로 자신이 섬기던 가문으로부터 토사구팽당해 조용히 살해된다. 그러나 죽음 직후 시간을 거슬러 자신이 순양가 막내아들로 환생해 되살아난 것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가문의 경쟁자들을 하나씩 처분하면서 결국 순양가의 부와 권력 전체를 집어삼키는 복수를 완성한다. 

이처럼 소시민이 특별한 계기를 맞이하여 사회의 타락한 재벌이나 유력자들에게 치밀한 복수를 감행하는 서사는 최근 드라마계에 단골처럼 채택되는 서사 공식이다. 올해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tvN <작은 아씨들>이 유사한 서사 공식을 택한 드라마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는 시청자들의 확연한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20여 년 간 한국의 드라마에서 재벌 후계자의 위상은 대부분 '이상적인 연인'에 고정돼 있었다. 이런 추세는 <파리의 연인>(2004)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2005) 같은 트렌디 드라마에서 재벌 2세 혹은 3세 남자 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의 전형으로 굳어진 이후, 꽤 오랫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업계 트렌드가 정치적 올바름(PC)과 반자본주의 편으로 기울면서, 한국 내 드라마 속 재벌 후계자의 위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애초 정치적 올바름 이념 자체가 과정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좌파 사회주의의 이상으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보니, 경제 영역에서 반자본주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의 조류에 맞춘 반자본주의 이념의 부각은 아카데미상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2019년 <로마>, 2020년 <조커>와 <기생충>, 2021년 <노매드랜드> 등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에 고통받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몸부림이라는 사회주의적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기생충
▲아카데미의 반자본주의 지향을 알리는 영화 <기생충>의 수상.

여기에 더해 국내 현실적 경제 상황도 드라마의 반자본주의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0년대 말부터 2020년대 초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간은 한국 사회가 인구나 경제 구조 측면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절대적 부의 팽창 시대를 마감하는 시기로 자리매김했다.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에 혼인율과 출산율은 급전직하하고, 국가 전체의 생산가능 인구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젊은 세대는 이전처럼 평탄하게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어려워졌고, 만성적인 고용 불안정과 소득 감소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가는 계층 이동 기회가 막혀버린 사회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를 재벌들에게 돌리는 작품들의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재벌들에게 복수하면서 그들의 부와 권력을 치밀하게 잠식하고 강탈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얻는 주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 역시 이런 맥락의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재벌의 일그러진 초상: 반자본주의 이념에 맞춘 엉성한 서사 요소

이처럼 최근 반자본주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 드라마 속에서 재벌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절대악으로 그려진다. 냉혹하고, 무자비하고, 부와 권력을 위한 무한한 탐욕에 잠식돼 주변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최종 흑막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어느 정도 현실적인 요소도 반영돼 있다. 다수의 재벌 혹은 재벌 후계자들이 자행해온 편법과 부정, 그리고 그들의 삶에 뿌리박힌 특권의식과 그로 인한 추태에 대한 실망감이 작품 속 악독한 재벌의 이미지에 녹아내려 있다.

이렇게 재벌들이 최악의 범죄자들로 그려지는 사회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대중문화 콘텐츠가 제시하는 재벌들과 권력자들의 악에 대한 해법은 대부분 이율배반적이고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첫째, 재벌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개인적 복수를 위해 스스로 재벌 혹은 그 이상의 부와 권력을 소유하는 위치로 올라간다. 둘째, 그렇게 재벌이나 권력자의 위치로 올라간 주인공은 자신이 거꾸러뜨린 기존 재벌들과 다르게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들과 자신의 부와 힘을 나눌 줄 아는 자로 성장한다.

이는 비운의 주인공을 위한 복수의 서사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이념이 가르치는 분배의 정의 즉 결과의 평등의 정의에 충실한 결말이다. 그런데 이 둘의 결합은 사실 비현실적인 혼종이다.

비운의 주인공이 자기 복수를 위해 그토록 치밀하고 독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그 한도를 가늠하기 힘든 트라우마와 자기연민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데, 이런 인물이 과연 모든 복수를 마쳤다고 그 복수의 달콤한 결실인 부와 권력을 다른 이들과 쉽게 나눌지 의심스럽다. 

재벌집 막내아들
▲송중기, 이성민 등 화려한 캐스팅을 선보이는 <재벌집 막내아들>.

이렇게 조악하고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은 값싸게 소비되는 장르소설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자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떤 인간이라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자는 그로부터 나오는 쾌락과 힘에 도취되어 심령이 퇴락하기 마련이다. 

만약 현실이라면 악독한 재벌에게 복수를 마친 주인공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기존 재벌들과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다름아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부의 속성이다. 그리스도께서 만나는 세리들과 부자들마다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부와 권력이 인간을 자기도취에 중독시켜, 도무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며" 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다.

칸트 또한 이런 성경의 지혜를 따라 자기애(self-love)가 인간의 실천이성(선의지) 발현을 근본으로부터 가로막는다는 것을 가르쳤다. 인간의 심성은 생각보다 유혹과 자극에 약해서, 부와 권력이 주는 진득한 쾌락이나 자아도취의 덫에 조금만 발을 들이더라도 거기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재물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셨다.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는 명령에서의 강조점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분배'가 아니다. 여기서 진정한 강조점은 그리스도를 좇으라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가 여전히 분배된 부와 재화의 향유에 궁극적인 목표를 둔다면, 후자는 아예 부와 재화의 향유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구원을 바라는 참된 신앙의 길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계속> 

재벌집 막내아들
▲부와 재물에 먹혀버린 인간 군상을 보여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