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본문)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지리적으로 빌라델비아는 터키 서남부에 있는 사데 교회에서 동남부로 100리쯤 떨어진 곳에 큰 산 중턱 아래쪽 평지에 BC150년 전에 필라델푸스라는 사람이 로마 원로원의 지원을 받아서 건설한 도시였습니다. 전략적으로 골짜기마다 있는 도시의 중심지로 건설을 했고 포도와 목축업이 성행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전략적 도시로 만들었는데도 헬라 문명이 급속도로 파급되어 이 지역이 헬라문명권으로 엄청난 문화 선진(先進)의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유대인들이 세력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유대교라는 율법적 교리를 강조하면서 그곳에 세워진 빌라델비아 교회를 괴롭혀 왔습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도 중에 누가 세웠는지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짐작하기는 정통한 진리를 깨달은 한 그리스도인이 그곳에 가서 살게 되면서 전도해서 세운 교회가 아닐까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특징은 사도나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구속사적인 복음의 체계적인 교훈도 가르치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성령을 충만히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뜨거운 기도를 통하여 불같은 역사는 기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미 유대교로 자리 잡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에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기도 하셨고, 구원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과 상관도 없는 그들이 하나님은 자기들의 독점물인 것처럼 여기고 성령에 이끌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헛되고 잘못되었다고 해서 핍박함으로 많은 순교자가 생겨나게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본문 7절에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대하신 믿음의 사람이며 이스라엘 2대왕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이상적으로 잘 다스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예루살렘 성을 다윗을 통해 건립하셨습니다. 이 다윗은 구약시대에 앞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예표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전권을 하나님이 다윗에게 맡기셨는데 그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면서 목자이기도 했습니다. 열쇠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절대주권을 가졌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분의 왕국에서 절대주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8절에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는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와 하늘나라가 개통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7:55-60에서 보면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하나님이 그의 영안을 뜨게 해주셔서 하늘나라 문을 열어 그가 순교하면 맞아들이시기 위하여 보좌 우편에 일어서 계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늘나라 문이 열릴 때 구원 얻은 성도가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이와 같이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다니는 모든 신도들의 믿음이 예수님 보시기에 하늘나라 들어갈 자격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8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의 교훈을 순종하고 복종하며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자리잡은 유대인들의 핍박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예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고 그들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예수라는 말의 뜻이 나와 있습니다. 그 예수라는 이름을 배반하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부인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할지언정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8절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라고 한 말은 어느 유능한 목사님이 세워 가르친 교회가 아니라 어느 평신도에 의해 가꾸어진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9절에는 유대교의 집단이 다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나라 사람들 중에도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도 덩달아 유대인 행세를 하려고 했던 사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하늘소망 가꾸자고 믿음 생활하는 매 순간마다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고 계신 예수님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항상 건전한 생각과 충성스러운 생활 신앙으로 예수님 앞에 책망이 아니라 기대와 신뢰를 모을 수 있도록 진실한 신앙 인격자로 믿음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데 교회를 두고 예수님은 "네 행위의 온전함을 찾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심판의 칼을 들고 찾아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감동을 받은 자들 몇 사람을 너희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박해당하는 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로 알게 하시겠다고 본문 9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정절을 지켰을 때 승리하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는 하나님이시며 육으로는 사람과 같은 분으로서 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오셔서 고난과 멸시를 당하고 죽임당하시면서 '다 이루었다'는 이 한마디는 그리스도로서의 소임을 완성하셨다는 선언이었습니다. 10절에서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이같이 행하신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 지고 가는 길에서 어떠한 환란과 핍박, 죽음이 오더라도 두려움으로 기피하거나 변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또 다른 시험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이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여지는데 이때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지고, 변절자도 생겨나고, 믿음이 없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이 있기도 할 것이라고 다니엘서, 에스겔, 스가랴, 데살로니가후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의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미 천국에 갈 믿음을 가졌고 면류관 또한 받을 상태이지만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둥은 그 건물을 받히고 있는 것으로 가볍게 빼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둥은 빌라델비아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교회도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그 사람의 이름위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인과 새 예루살렘(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보배로운 주인공이 되게 하는 사인, 예수님의 새 이름인 만왕의 왕의 사인이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이 보배롭게 여기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이 편지는 빌라델비아 교회에만 보낸 편지로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신 공적 편지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 멸망할 자리에서 불러내어서 모아 놓은 곳입니다. 즉 하늘나라 가기 위한 정거정과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닌다고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가는 티켓을 가진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을 죄악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불러내셔서 하늘나라 가기 위한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요즘 교회들 중에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보다 세속적인 기대감을 부추기고 마치 무속신앙과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영적 소망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6:1-7에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기하급수적 부흥이 이루어졌을 때 사도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안수집사 제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직책과 직분이 생겨나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나누어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하심을 얻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권세와 능력의 말씀을 선포해서 많은 영혼을 구원 얻게 합니다. 그리고 구원 얻었거나 구원 얻기 위하여 영적 지도에 소망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을 에클레시아(교회)라고 해서 성도 상호간에 신령한 교제를 나누면서 구제, 봉사, 전도하는 일에 목회를 깊이 이해하고 적극 협력 봉사하라고 세워진 것이 교회의 봉사직제입니다.

장로교는 목사나 장로가 똑같은 치리권을 가졌다고 장로교 헌법에 되어있지만 단 하나, 목사에게는 강도(講道)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라도 목사에게는 양 떼중 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중직으로 세움 받은 장로라도 하늘나라 가기까지 목자로부터 영적 지도를 계속적으로 받아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와 교회 제직들 사이에 신학적 신앙노선이 일치하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영적 체질신앙이 일치하게 되고 그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협력하는 일이 조화를 이루게 될 때 그 교회는 진리와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급속도로 부흥, 성장하면서 그리스도 나라 확장에 크게 기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여 모든 교회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교회를 위해 하늘 문을 열어 놓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러한 믿음으로 천국을 향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