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 명예교수, 혜암신학연구소 편집고문)이 최근 '김경재의 혜암칼럼'을 통해 인간의 '편견'과 '탐욕'을 꼬집었다.
김 박사는 <현대인의 근본악 '편견'과 핵심 죄성 '탐욕'-21세기에서 기독교 원죄론의 탈바꿈>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갈들에게 원죄성은 누구나 피하지 못하기도 하고 빨려 들어가는 '편견과 탐욕' 문제라고 본다"고 했다.
먼저 탐욕에 대해 그는 "한국사회에서 2대 종단이라고 일컫는 기독교와 불교에서도 가장 큰 죄의 이름으로서 탐심 혹은 탐욕이 제일 첫 번째 자리를 공통적으로 차지하고 있을 만큼 탐심(탐욕)은 인간학의 근본 문제"라고 했다.
이어 "기독교와 불교가 공통적으로 큰 죄라고 규정하는 탐욕은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로서 생존본능에 필수적인 식욕이나 성욕 등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인간 이외 어느 동물도 평생 사용하고도 다 사용 못할 필요 이상의 물질적 점유를 시도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나머지 다른 두 가지 큰 죄, 곧 교만(hubris)과 불신앙(unbelief)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영적 쿠데타의 감춰진 동기라고 한다면 그 실행적 행동 쿠데타 현상이 욕망 또는 무한 탐심으로 나타난다"며 "불교에서도 나머지 다른 두 가지 커다란 마음의 독(毒)으로 규정된 진에(분노)와 우치(만물의 因緣生起 理致를 모르는 어리석음)보다 탐심을 첫 번째로 나열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편견에 대해서는 "20세기 동안 정신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학문적 결실 중 한 분야에 해석학(hermeneutics)이 있다. 해석학이란 글자 그대로 텍스트를 바르게 이해하는 이론"이라며 "텍스트는 반드시 문자나 기호로 표현된 것만 아니다. 인간사 생활 속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 신문에 나오는 정치적 기사거리들, 사람 얼굴 표정 등도 텍스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결론적으로 말하면, 특히 정신과학의 산물인 텍스트와 역사적으로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큰 사건의 의미를 '이해' 하려 할 때, 백지 상태의 비운 마음으로써는 이해작용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대 해석학 학문의 결론이다. 사람의 마음이나 두뇌활동은 카메라와 같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마음이나 생각하는 두뇌는 텍스트를 대하고 사건을 이해하기 이전에 이미 어떤 삶의 체험으로 형성된 관점, 가치 지향성, 옳고 그름, 선하고 악함, 아름답고 추함 등에 관하여 어떤 전이해(前理解, pre-understanding)혹은 선입관(先入觀, preconception)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전이해(前理解)와 선입관(先入觀)은 편견(偏見, prejudice)으로 변질되기 쉽지만, 그 세 가지 단어의 의미는 조심스럽게 구별되어야 옳다. 전이해와 선입관은 굳이 고의성을 갖는 마음 상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삶 체험 속에서 형성된 이해의 밑바탕이다. 텍스트, 사물, 사건을 바라보는 일차적 관점이다. 그러나 편견은 고의적 감정, 의도적 적대감이나 호불호 감정에 물든 마음 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그는 "'편견'은 현대인들의 원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나친 '편견'은 편견을 지닌 집단이나 개인을 병들게 하고 역사의 진로를 뒤틀리게 한다. 집단적 '편견'은 플라톤이 『공화국』에서 비유로 말한 '노예들이 갇혀 있는 깊은 동굴' 같아서 그 동굴에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며 "어떤 용기 있는 노예가 동굴 밖 광명천지 세계를 직접 체험하고 돌아와서 동료 노예들에게 말해줘도, 그들은 믿지 않고 도리어 '안정된 질서'를 혼란하게 만드는 선동가로서 규탄하고 매장시키고 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