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박사
(Photo : 기독일보) 김형태 박사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의 일이다. 시골 조그마한 면(面) 소재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오(吳) 집사라는 분이 있었다. 吳 집사는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吳 집사가 운영하는 이발소에 면장님이 이발을 하러 오셨다. 옛날에 '면장님' 하면 시골에선 정말 대단히 존경받는 원로 어른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교장선생님 바로 옆자리에 앉는 분이 바로 면장님이었고, 임기를 마치고 나면 면사무소 근처에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長)이었다.

이렇게 존경받는 면장님이 손님으로 오셔서 머리를 깎아드리고 있었다. 한 절반쯤 깎았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발을 하던 吳 집사가 "면장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는 후다닥 문을 열고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면장님은 속으로 웃으면서 '저 사람 배탈이 났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이발사가 돌아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면장님은 머리를 절반 정도만 잘랐기에, 바깥으로는 나갈 수도 없었다. 줄담배를 피우면서 이발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면장님은 속으로 은근히 화가 났다.

한 30여분 지난 후에 吳 집사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돌아왔다. 화가 난 면장님은 "아니, 이 사람아. 머리를 자르다 말고 어디를 다녀오는 건가?" 하고 퉁명스럽게 질문 겸 질책을 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면장님. 예배당에 좀 다녀왔습니다."

"이발하다 말고 예배당에는 왜 다녀오는 거야?"

"제가 오늘 아침에 예배당의 방석과 커튼을 세탁하여 지붕 위에다 널어 놓고 예배당 안의 의자와 집기들도 햇볕을 쪼이려고 밖에다 다 내놓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에 들여놓고 왔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교회가 손님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도대체 교회에서 얼마씩이나 주는데 그래?"

면장님의 질책에 吳 집사는 쩔쩔매면서 대답을 한다.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면장님."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는 거야?"

"주님을 사랑하기에 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런 것 밖에 없습니다."

면장님은 이발을 다 마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다음 주일에 그 면장님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교회에 나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吳 집사, 보수가 한 푼 없어도,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자네가 교회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네. 내가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네가 그렇게 한 푼도 받지 않고 기쁘게 일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 무언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 면장님도 후에 훌륭한 교인이 되었다. 어느 목사님이 들려준 실화이다.

신앙생활을 해도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하면,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신앙'보다 더 좋은 전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10번 정도의 설교를 듣는다(7일간 새벽예배+ 주일 낮+ 주일 오후+ 수요일 기도회 등).

우리는 한 달에 60번 이상 설교를 듣지만, 생활로 열매 맺는 비율은 아주 낮다. 불임 설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교인들에게 일주일 전의 예배 때 들은 설교 제목과 성경 본문을 물어보면 30% 미만이 겨우 대답할 정도란다.

여름철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비는 내려서 도랑물로 흘러 갔지만, 땅을 파보면 땅 속을 적시지는 못한 채이다. 스며들지(내면화-생활화) 않는 설교는 울리는 꽹과리같이 순간 소리만 요란한 것이다.

예배 때 토설하고 꺼내놓은 잘못 들을 예배 끝나면 다시 주섬주섬 주워 담아서 다시 갖고 나가는 '다람쥐 쳇바퀴 신앙'을 반복하게 되니, 달려가기는 하는데 위치는 항상 제자리에 맴돌고 있는 것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