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l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는 주님의 말씀은 어느 복음서에도 없지만, 이 말씀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정신은 복음서들에 기록된 예수님의 여러 말씀들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8)".

지금 나라 안팎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하는 백성들이 있습니다. 도와달라는 호소가 여기저기서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월드비젼과 유니세프 등 많은 봉사 단체와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영되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참상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물이 없어 샘물을 파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인해 죽어가는 모습, 배우고 싶어도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의 딱한 처지 등을 바라보면 참으로 애가 마릅니다.

우리 역시 얼마 전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픈 나머지 물로 배를 채우고, 부잣집 아이들의 도시락을 쳐다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며 부러워했던 추억이 솔솔 떠오릅니다.

어떤 부잣집 아이의 도시락은 하얀 쌀밥 위에 노란 계란프라이, 그리고 빨간 마른오징어 반찬을 볼 때마다 먹고 싶은 충동으로 점심시간마다 늘 군침을 흘렸던 시절을 추억하면, 참으로 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정말 먹고 싶어 그 학생의 가정환경이 부러웠던 모습이 생생하게 그리움으로 젖어오는 깊은 밤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에 먹을 것이 풍족하다 못해 아까운 음식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는 광경을 바라보면, 그리고 북한의 우리 동포들, 가난한 우리 이웃들과 아프리카 난민들의 처참한 생활 모습들을 보노라면, 금 새 눈가에 눈물이 흐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41절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아들을 내어주시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기르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을 받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과 십자가의 신비로 매일매일 영적인 떡, 예배를 통해 배불리 먹여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내려 주신 영적인 떡을 통해 튼튼해진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진정 세상에 살아있는 떡으로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미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기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야 함을 늘 고백하며, 사랑의 군병으로서 이웃을 향한 시선으로 날마다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나의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호흡하고 살아간다는 이 순간이 감사하며, 또한 어려운 환경이지만 분명 나누며 살아가는 실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부자들보다 나눔의 실천은 오히려 가난한 이들이 더 많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내 형편에서 내가 가진 것 중에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눌 수 있는 삶이 그리스도의 정신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갈증을 호소하는 난민들에게는 물을,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저 아프리카의 난민들과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질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나눔의 실천을 한다면, 우리 이웃들에게는 분명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33세에 백만장자가 된 록펠러는 43세에 미국의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55세에 불치병에 걸려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실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l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사도행전 20:35)".

그 글을 보는 순간 록펠러는 마음 속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습니다. 선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조금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 시켜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는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는지 후일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때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회고합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렇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큰 기쁨이 생겨납니다. 내가 무엇을 받으려 하는 생각보다, 무엇을 주려고 하는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최고의 기쁨과 만족은 어디서도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삶입니다.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된 록펠러 역시 병원 로비에 걸어둔 액자의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침 병원비가 없어 병원 안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을 보며, 조금 전 감동을 받았던 그 심령으로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1년 밖에 살지 못할 위기에서 100세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며,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한 그로서는 기쁨의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는 이제 98세까지 존경받으며 살았던 나눔의 모델 아닐까요?

지금 코로나19라는 질병 때문에 나라 안에서는 개인 이기주의가 만연합니다.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어렵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한 정치는 하지 않은 채, 오롯이 권력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참으로 애가 마릅니다.

저마다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몸부림치며 네거티브와 시위, 폭력으로 얼룩진 나라를 볼 때, '언제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했을까?'라는 생각이 미래를 암울하게 할 뿐입니다.

저 정치가들은 왜 받기만 하며 챙기려고만 할까요? 그들도 이웃을 위해 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나라는 참으로 좋은 나라가 될 터인데 말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크리스천들은 한 마음이 되어 이웃을 돌아보며, 주님께서 이 땅에서 손수 담당하셨던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당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라를 위해, 그리고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는 귀한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