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들은 한번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최종적인 구원을 얻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요한 복음 10: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유다서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그러나 바울 사도는 구원의 신비와 파라독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얻는 것이지만, 구원 받는 신자의 말씀에 복종하는 삶, 즉 성화의 노력이 또한 필요함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러나 그러한 노력, 즉 성화의 노력도 신자의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주관하심을 말씀 합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주신 은혜를 인간이 헛되게 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고린도 전서 15;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 사도는 인간도 자신의 구원을 자신의 의사결정, 즉 주신 은혜를 통한 지속적인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든지, 아니면 믿음을 버림으로 주신 은혜를 헛되게 하든지를 결정 하게 됨을 도외시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후서6: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그는 인간이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거절할 가능성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오직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믿음의 삶 가운데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도 오직 성령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만 이루어갈 수 있는데 그 성령님의 역사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골로새서 1: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그러므로 위의 요한복음 10;28-29, 로마서 11:29, 그리고 유다서 24는 믿음으로 거듭난 자가 거듭난 자로서의 영적인 삶, 말씀과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 거룩한 삶을 살아 가는 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까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오죽하시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셔서 정의를 세우는 동시에 사랑의 구속사업을 이루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신 동시에 의롭고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 구원을 일단 얻었다고 하드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매일과 같이 성화의 길을 닦아 하나님처럼 거룩한 존재가 되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0: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히브리서 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현재의 구원뿐 아니라 최종의 구원까지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 기초로 하지만, 그 말씀의 순종을 주관적 기둥으로 하여 세워집니다.
디모데후서 4: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고린도 전서 15: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히브리서 6: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위의 성경말씀들을 묵상하면, 믿음의 확실성과 구원의 확실성은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크리스천의 매일의 삶 속에서 실현되어 진다고 생각됩니다.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알고 영접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전부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웃 사랑에 바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수고와 진력을 내용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합니다.
게으르거나, 넘어질까 조심하지 않거나,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를 경외하지 않거나, 수고하고, 진력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헛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점에서 저는 한국 교회가 일반적으로 칭의를 통한 구원은 지나치게 강조해온 반면,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는 너무나 소홀하게 다루어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날 성도와 목사와 장로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길가에 버리어져 불신자들의 발에 밟히는 참으로 대성 통곡할 일의 단초가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바른 크리스천들이 열망하고 기도하는 한국 교회의 개혁은 온전하고 바른 구 원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을 믿으면서 죄짓기를 두려워하며 매일 같이 지은 죄를 회개하며,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감을 통하여 매일 매일 성화를 이루어 갈 때 교회는 개혁을 회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개혁이 이루어 진 후에야만 사회개혁이, 국가개혁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역사는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