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말씀 한글로 바르게- 

한글 수리가 부업인 내 비즈니스 운영 모토다. 고장 난 한글부터 회생 불가한 한글까지 작업장에 실려 온 한글은 내 손을 거쳐 올바르게 거듭난다. 불구의 몸으로 누워 있는 글들은 한결같이 손봐주기 원하는 눈치다. 어디 고칠 데는 없는지 오염된 곳은 없는지 요리조리 뒤지는 시각이 기본이다. 좋게 봐서 한글사랑이지 까놓고 말해 지적질에 가깝다. 형제 눈 속의 티는 잘 찾아내면서 내 눈 속 들보에는 무지한 느낌이라 매양 속상하나 타고난 걸 어쩌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한글을 보면 메스부터 쥐고 본다. 이것도 병이라면 직업병이겠다. 

내 주요 고객은 <하다적 것이다의 수동형 존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이다. 목회자와 신학 교수 및 그들에게서 오랫동안 듣고 배운 대로 따라 하는 성도와 신학도들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듣고 믿음을 굳건히 한다. 말씀을 전달받아 믿음으로 체화한다. 말씀의 전달자가 오류 투성 언어로 표현하고 말씀의 수신자가 여과 없이 몸으로 이해할 때 문제다. 몸으로 익힌 게 오래가는 법이다. 몸의 재활이 인내에 달려 있듯 몸에 밴 언어를 교정하는 일 역시 의지에 달려 있다. 

표준어의 중심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며 한국어가 어색하게 들린 적이 두어 번 있다. 중학교에서 영어 배울 때 어색하게 번역하던 경상도 교사가 그렇고 ( 해왔던, 했던, 하던..의 경우, 그 교사는 대부분 '했는'이라 말했다 ) 교회에서 설교 들을 때 이상한 표현을 반복하는 목사가 그렇다. 말투를 못 고치는 교사나 오류를 안 고치는 목사를 통해 학교나 교회 사람들은 그대로 배우고 따라 한다. 말을 많이 하는 위치라면 사용 언어를 늘 돌아볼 일이다. 하다, 적, 것이다, 의, 수동형, 존칭으로 분해하여 접근하기로 한다.

[하다]를 오용하는 사례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의 대표로 '자유하다'가 있다. 성경에 그리되어 있지 않음을 눈으로 보고 소리 내어 읽음에도, 성경 없이 말할 때면 으레 '자유하는'처럼 쓴다. 개역개정에 '자유롭게, 자유로운'으로 쓴 지 오래다. 성경 어디에도 '자유하는'이란 표현은 이제 없다. 이를 안 고치는 목회자가 허다하다. '부자유하다'란 말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반어인 '자유하다'도 존재한다 생각하면 오류다. 

  • 요한8: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고전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엄연히 이렇게 명시했음에도 목회자분들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며 멋진 오류에 앞장서고 있다. 하다못해 표준말을 잘 전달해야 할 언론 방송사마저 이 오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 어맨다 고먼이 낭송하는 축시의 한글자막에 오류가 있어 소개한다.

어맨다 고먼 : "우리는 환하게 그리고 용맹하게 그늘에서 벗어나리. 우리가 자유케할 때 새로운 새벽도 피어나리."  출처 : SBS 아침 8시뉴스 Jan 21 2021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80330&plink=THUMB&cooper=SBSNEWSPROGRAM&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자유하게 하다 > 자유하게 할 > 자유케 할 / 굳이 분석해 보면 이렇게 되나 '자유하다'라는 말이 없으므로 '자유케할'은 오류요 띄어쓰기도 틀리다. 

'호적하다' 역시 그르다. 이 말은 목회자의 오류를 넘어 한글번역본 성경 자체가 문제다. '호적에 올리다'라는 늘어짐을 회피하려 '호적하다'라 할 수는 없다. '호적하다'란 말은 '아주 알맞다'라는 형용사다. 전혀 다른 말이다.

  • 눅2:1,3,5 호적하다 → 호적에 올리다

"지금의 고통한 상태를 이겨 내게 하소서" → 고통스런

"우리가 관심하는 건 하나님의 비밀한 일입니다" 

'고통하다'라는 말도 없다. '자유하다'에서 비롯한 오류를 모든 말에 아무렇게 적용한 결과다. 동사 관심하다와 형용사 비밀하다라는 용언이 존재하나, 이처럼 존재하는 어휘조차도 사용빈도가 빈약하여 일반인들에겐 생경하게 들린다. 이는 필시 관심하다, 비밀하다라는 용언의 활용을 목회자께서 적확하게 사용했다기보다 습관적으로 접미사 '~하다'를 붙여 표현하는 데서 나온 우연의 일치로 보인다. 이런 오해를 없애려면 '자유하다'부터 고쳐야 할 일이다. 굳이 글로 쓰겠다는 고집이라면 '자유 v 하다' '호적 v 하다'로 띄어 씀을 권한다. 마치 "이따 저녁에 술 할까 (=마실까)?" 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조차 말로 표현할 때는 띄어쓰기를 할 수 없어 옳지 않게 들리며, 띄어 쓴들 외려 띄어쓰기 오류라 오해받기 십상이다. 

[적]의 과도한 사례

이 어휘는 문장을 압축하는 기능이 있으나 모든 문장을 틀에 가두는 역기능도 있다.

  • 성서해석학은 성경 저자와 해석자의 심리적 동시성이 경험되는 생동적 과정이다

  • 오병이어는 축제적인 사건이다 : 축제와 같은 사건이다

  • 그 결과적 풍경은 : 그 결과로 나타난 풍경은

  • 오늘날 적용적 메시지 : 오늘날 적용 가능한 메시지

  • 상처적 의미, 최종적 잔치, 숫자적 의미  : 상처가 주는 의미, 최종 잔치, 숫자 의미

  • 인지적으로 몰랐다 : 인지하지 못했다

  • 본문적 갈등, 유대 민족적 절기 : 본문이 주는 (내포하는) 갈등, 유대 민족 절기

  • 악의 세력의 최종적 우두머리인 사탄 : 악의 세력 최종 우두머리인 사탄

예시를 보듯 얼마든 풀어 쓸 수 있고 생략하면 한결 좋다. 목회자께서 말과 글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진부한 표현이다. 문장을 길고길게 쓰는 데다가 '~적 ~적'이 한 문장 안에도 연이어 나온다. 어떡하든 문장이 지루하고 빈곤하며 반복되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 

[ 것이다 ] 남용 

이 말은 목회자와 신학교수로부터 배운 분들께서 모든 문장에, 아주 많이 사용하는, 틀에 박힌 종결어휘다. 천편일률 태반의 문장을 '것이다'로 마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굳이 예를 들지 않겠다. 글을 쓰는 그들 스스로 분명 알 '것이다'.

[ 의 ] 불편하고 빈번하게 사용하는 조사 

  • 인자의 온 것은 (막10:45)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 나의 기도하는 동안 (막14:32) → 내가 기도하는 동안 

  • 나의 사랑하는 성경 → 내 사랑하는 성경, 내가 사랑하는 성경

관형격 조사 '의'는 앞뒤 말을 주어와 술어, 전체와 부분, 소유와 소유물(속성)의 의미관계를 내포하는, 중의적 성격을 띠는 말이다. 개역개정에서 이미 주격 조사로 고쳐 표현함에도 이 불편한 관형격 조사를 줄기차게 사용하는 분들이 많다. '나의 사랑하는 성경'은 my beloved bible을 곧이곧대로 직역한 데서 벌어진 일이다. 이 말이 관형격 조사 외에 주격 조사로 쓰이는 경우를 알기란 쉽지 않다. 뒤에 오는 동작

  • 상태의 말에 대해 주체임을 나타내는 주격 조사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의 사랑하는 성경'을 '내가 사랑하는 성경'으로 바꾸는 데에 문제없다. 영어는 영어고 우리말은 우리말이다. 한 글자만 고쳐도 부드럽고 간결하다. '의'를 써야 무게감 있다고 하면 개선될 여지가 없다.
  •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개념은...

  •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겔1:28) 

이는 전치사 ~ of...~ of.. 가 연거푸 나온 표현을 그대로 옮겨서 생긴 결과다. 어색하다. 영어와 우리말은 다르다. < 나의 사랑하는 생활 >이란 수필이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수필가로 유명한 피천득 씨도 이 부분에서는 원만하지 않은 표현을 쓴다. 물론 그때는 많이들 그리 썼다.

[ 수동형 ] 표현 남발

  • 적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퍼부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인 '것이다' /  퍼붓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 지어지는 성전 / 짓고 있는 성전

  • 하나님께 순종되어지는 사람 / 순종하는 사람

  • 이렇게 만나진 제자들을 데리고 가나 혼인 잔치에 / 만난

  • 성경에 남아져 있는 / 남아 있는 

  • 습관이 녹아져 있는 / 녹아 있는

  • 예수 제자에게 보여질 부활 / 보일, 보이는

  • 합리적으로 들려지십니까 / 들립니까

  • 자신이 죽어져 생명의 양식이 되시니 / 죽어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 / 썩지 아니하는

  •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엡4:22 / which is being corrupted by... 

마지막은 영어의 수동진행형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려다 생긴 불편한 예다. '썩어가는' 하면 충분히 좋은 표현이다. 교회에서 수동, 피동형 문장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한 필자의 언급에 어느 목회자(겸 신학교수)께서 '인간의 피창조성'으로 대응해 온 바 있다. 곧 인간 세상은 피조되었기에 창조주를 능동형으로, 우리와 세상은 수동형으로 표현한다는 게 취지다. 필자는 이에 대해 저항하고 싶지 않다. 다만 글을 읽기 좋게 올바로 쓰는 일이 신앙의 문제와 무슨 연관인지, 수동형 표현이 다분히 성경적인지는 모르겠다.

[ 존칭 ] 한심한 표현의 극치

  •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고후5:9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살전4장 타이틀

이 두 예문은 완전한 오류요 보면 볼수록 한심하다. 누가 누구를 기쁘시게 하는지 생각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무슨 수로 번역하겠는가. 설명이 굳이 필요 없는 초등 수준의 문장이라 독자 스스로 이해하길 바란다. 개역개정에서도 이 문장에 대해선 이제껏 쓰고 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래 오류를 보면 쉬이 납득이 간다.

  • 자동차 오일이 새십니다

  • 현금이 입금되셨습니다

  • 머리카락이 너무 기시니까

  • 지금 들어오시는 기차를 타도록 하세요

자동차 오일이, 현금이, 머리카락이, 기차가 사람보다 존엄한 존재인 양, 한껏 존대를 받고 있다. 한결같이 어색하지 않은가. 

  • 자식을 죽이셨는데 하실 말씀 없으세요 ?  / 자식 살해한 아버지를 취재하는 기자가 범인에게 존대랍시고 '죽이셨다'는 표현을 쓴다.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는가. 한심하고 답답한 말과 글에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존칭은 제대로 사용하고 표현해야 한다. '자식을 죽였다'는 나쁜 의미에 존대가 필요한가. 뒤에서 '하실'이라고 했으니 충분히 존대 표현은 한 거다. '죽이셨다?' 아무리 읽어봐도 불편하다.

그 외 

[ 을, 를 ] 어색한 조사, 거치적거리는 조사

  • 말씀을 힘입어 → 말씀에 힘입어

  • 그리스도를 인하여 →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미 교회 전문 용어에 익숙해진 상태에서는 '~을 힙입어'가 결코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 유대인의 국가를 건설할 것을 → 유대인 국가 건설을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시126:5 → 눈물 흘리며 씨 뿌리는 자

생략이 주는 간결은 독서에 크게 작용한다. 부드럽게 읽을 수 있어 좋다.

그들만의 용어

  • 그룹 :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창3:24)

성경에서 최초로 헷갈리는 용어라면 '그룹 cherubim'이라 하겠다. 기독교 입문자라면 누구라도 Group으로 인식한다. 서양언어가 중국식 발음을 통해 다시 우리식으로 표현한 거라 해도 가끔가다 짜증날 때가 분명 있다. 

  • 외식 :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갈2:13)

'외식'이라고 하면 밖에 나가 밥 먹는 의미가 일반이다. 성경 외에는 이 표현을 잘 쓰지 않으나  충분히 납득할 수준이라 인정한다. 

  • 결례 :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I was ceremonially clean 행24:18

결례를 행한다 역시 예를 범한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처럼) 외엔 상상할 수 없다. 어떻게 저 말을 두고 Clean을 생각하겠는가. 그 옛날 저 산골 깊숙한 서당에서 한자깨나 가르치던 스승께서 쓸 말이다.

맘대로 번역 

  • 므로닥발라단  Marduk-Baladan sent Hezekiah letters and a gift  사39:1 

발라단은 사용하면서 마르둑이라고는 못 하는지, 곧 마르둑발라단 해도 될 말이다. 번역의 원칙에 준해 그리했다손 쳐도 이제 싹 바꿀 때가 한참 지났음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앞 말만 바꾼 이 번역을 어찌하면 좋을지 개탄스럽다.

극히 어려운 어휘 

  • 휴거, 인치, 반차, 무저갱, 분깃, 부요, 도고 intercession(딤전 2:1), 기사 wonders(행2:19), 들레다(마12:19), 기묘자(삿13:17), 시온을 편답하고walk about (시48:12) 토색 (눅18:11), 은장색(행19:24)...

미주장신 신대원 장덕영
미주장신 신대원 장덕영

은장색보다 은세공 silversmith이라 하면 될 것을 굳이 어렵게 써서 색깔을 표현하는 어휘로 착각하게 한다. 당최 상식선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이다. 기미독립선언문에서 사용한 어휘를 완전 이해하는 자들이나 쓸 법한 용어들인데, 기독교 지식 기득권이란 슬픈 생각이 들어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 

"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불편과 오류들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21:25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