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화려함 뒤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고뇌 보여
하나님이 자신에 어떤 말 하는지 듣고 싶었을 것
공식적으로 질문했으나 답 못 듣고 한 달 후 타계
한국 경제계의 거장 이병철 회장이 생전 하나님에 관한 24가지 질문을 남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로 시작해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로 끝나는 질문들은 비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종교나 신에 대한 질문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 질문에 대해 답을 듣지 못하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떴지만, 그에 대한 대답들은 여기저기서 출간되고 있다. 기독교 목회자인 황의찬 목사(온고을교회)도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을 최근 펴냈다.
황의찬 목사는 이 책을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삼성재단 이서현 이사장, CJ 이미경 부회장과 이재현 회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는 "그분 들 중 한 사람이라도 읽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송했다"고 한다. 다음은 황 목사와의 일문일답.
-이번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故 이병철 회장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것으로 아는데요.
"저도 원고를 완결하기까지 이런 제목이 나오리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기독교인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의 하나님'이라면 거부감이 일지요.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이지, '안 믿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의아스럽습니다.
책을 쓰기로 계획하고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과 그에 대한 평전을 구해 읽었습니다. 이 회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까지 읽었습니다. 대략 20여 권을 읽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논어>에 심취하여 지냈다는 것을 접하고, <논어>도 구입해 읽었습니다.
이 회장은 제가 33세 때 작고했으니 저와 동시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워낙 멀리 계신 분이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병철 회장은 '돈병철'로 불렸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한턱 내라고 하면 거부하는 관용어가 "내가 '돈병철'이냐?"였습니다. 이 회장의 공식 직함을 제외하고, 아는 것이라고는 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책을 쓰기 위해 본격적으로 이병철 회장을 탐색해 나갔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의 굽이 굽이에서, 그의 인간적 고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다면 그가 절대자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장의 스물네 개 질문은 그냥 스치는 것이 아니라, 절박함이 짙게 배어 있어요. 책 제목이 <이병철의 하나님>인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절실하게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1987년 11월 이 회장이 작고합니다. 작고 한 달 전에 하나님에 대한 질문 24가지를 남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 해도, 이 회장이 하나님을 찾았다기보다는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툭 던진 질문으로 생각했습니다.
또 질문 내용만을 놓고 읽어보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 하나님, 성경, 기독교에 대한 보편적 질문이었습니다.
2012년 가톨릭에서 처음으로 답변서가 나왔습니다. 그 이후 너댓 권의 답변서가 출판되었습니다. 그 답변서들은 대체로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놓고 '그가 하나님을 찾았다'고 해석하기보다, 그가 세상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질문들을 요약 정리해 기독교계에 전달했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답변을 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삶과는 무관하게 오직 질문 자체만을 두고 답변을 시도합니다.
저는 관점을 달리 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뭐가 답답해서 신을 찾았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이 회장의 질문을 보편적 질문으로 보지 않고, 특수한 질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다가서다 보니 이 회장은 분명히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간절히 듣고 싶어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병철 회장은 하나님의 답을 들었을까요.
"객관적으로는 듣지 못한 것으로 정리함이 옳을 것입니다. 질문지를 가톨릭의 한 신부에게 전달하고 한 달 만에 사망했으니까요. 그리고 질문지의 수신자인 신부님도 답변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가톨릭 신부에게 질문하기 전 개신교의 한 목사님에게도 질문했었다고 합니다.
분당 갈보리교회 박조준 목사님께 질문지를 전했고, 박조준 목사님이 답변서를 작성해 보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 갈보리교회 부목사로 계셨던 분에게서 들었습니다.
집필 중에 확인해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도 책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병철 회장은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았겠지요?
그러나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가톨릭의 신부에게 질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이병철 회장이 답변을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에 대해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서사는 한국의 대재벌이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일목요연하게 하나님에 대한 질문지를 작성하여 교계에 전달했으나 공식적으로 답을 듣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타계했다는 극적인 사실입니다."
-그동안 펴내신 책에서 목사님만의 독특한 신학의 단면을 언뜻 내비치셨는데, 이번 책에서도 목사님의 신학을 엿볼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신학은 기독교 역사 2천 년에 걸쳐 신학으로 혹은 교리로 자리잡아 온 체계에 순응하기보다는 '오직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기초하는 '전 신자 제사장'의 주제는 기독교가 쌓아놓은 전통에 늘 의구심을 제시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기독교 전통, 신학 혹은 교리는 때로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신학과 교리가 없어서도 안 되지만,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종종 이런 것들을 뛰어넘고 하나님과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전 신자 제사장을 천명한 베드로서는 그런 면에서 아주 귀합니다."
▲삼성 창업가 이병철의 하나님 황의찬 | CLC | 248쪽 | 12,000원 |
-목사님께서는 두 자녀가 청각장애인이고, 그 중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참척의 고통을 안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면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신학이 매양 거기에서만 우러나오는 것은 아닐텐데요, <이병철의 하나님>에서 드러내는 목사님 신학의 단면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병철 회장의 세 번째 질문에 답하면서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창조, 즉 하나님의 시작에는 생략이 있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기록합니다. 저는 이 책에서 '하나님의 생략' 지점과 인류 역사의 팩트체크가 가능한 시점을 대응시켰습니다.
문명학에서 말하는 4대 문명의 발상, 지질학에서 말하는 제4빙하기의 시작, 최근 화제가 된 농업혁명의 시작 등 이 세 가지가 공교롭게 짧으면 6천 년, 길면 1만 년 전입니다.
세 가지 분야로서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인류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만여 년 전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족보에 근거한 젊은 창조연대가 짧으면 6천 년, 길어봐야 1만 년입니다.
팩트체크가 불가능한 역사는 결국 추정에 의지하게 됩니다. 문명학, 지질학, 농업혁명이 보여주는 1만 년 이전은 추정에 근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고 아담 하와를 지어 시작한 인류의 역사 이전은 하나님이 생략하고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하나님이 생략하셨기 때문에, 인류가 팩트체크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책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복잡하기도 하고 처음 듣는 내용이라 생소하지만, 목사님께서는 이런 내용이 신학적으로 검증되기를 바라면서 책을 썼으리라고 봅니다. 다른 것도 있습니까.
"이병철 회장이 8번째로 성경에 대해 질문합니다.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흔히 예상되는 축자영감설 혹은 역동설로 풀지 않고, 아담과 하와에게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아담을 인정하고 성경을 증명하고자 하면 술술 풀리지만, 아담을 신화 속 인물로 단정하고 답을 찾으면 시작부터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입니다. 인류 첫 부부인 그들이 에덴동산의 경험을 후손에게 말하는 것으로 창세기에 접근하면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물로 주장하면서,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병철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런 접근법으로 신학의 물꼬를 돌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 외에도 어줍어 보일 수 있지만, 성경에 근거한 신선한 관점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국 경제계의 거장 이병철이 남긴 질문에 답변하면서 조금은 획기적인 신학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정통 논문으로 새로운 신학의 관점을 제시하지 않고, 비기독교인이 분명한 이병철의 질문에 빗대 신학적 논쟁을 촉발하고자 한다는 지적이 일지는 않을까요.
"신학이라는 것이 꼭 대학의 강의나 학술대회를 통해 제시되고 학적인 논란으로 집적된다는 틀을 깨고 싶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신앙과 실존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여, 신앙의 성장이 정체됩니다. 신앙은 왜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신학은 왜 실존에서 한걸음 비켜 서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소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신학과 신앙이 성도의 삶에 직결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삶에서 멀찍이 서 있는 신학이나 교리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크리스천 과학자 중에서 더러 자기 연구 분야와 성경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신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조과학회와 현대 과학과의 갈등이 그런 유의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보잘것없고 무익한 종이지만, 신학과 삶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목회와 신학은 바로 그것을 추구합니다.
이병철 회장이 24가지나 되는 적지 않은 질문을 남겼지만, 답을 듣지 못하고 개인의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자, 목회자, 평신도를 불문하고 앞으로도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답하는 책은 또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의 답변을 통해 신학과 삶과의 거리가 좁혀진다면, 이 회장이 남긴 질문의 열매일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늦깎이 목회자이자 신학자가 되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필두로 5년 남짓한 기간 6권을 펴내셨습니다. 한 권을 내기도 어려운데, 단기간에 다작하신 비결과 앞으로의 저작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저 자신도 '책 쓰는 목사'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저에게 '황 목사님은 책을 써야 합니다'는 말은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저 같이 작은 자가 쓴 책을 누가 읽겠습니까?' 하면서 웃어넘겼는데, 늦복이 터졌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같은 신학자, 저와 같은 목회자가 필요하셨던가 봅니다.
신학적으로 묵직한 주제이지만 각주를 달지 않고, 참고서적 목록도 붙이지 않으면서, 논문이 아닌 스토리 텔링으로써, 설득력 있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책으로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의 이러한 독특한 관점이 다작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 책인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을 펴내고, 농아교회 목사님들 세미나에 강사로 초빙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농아 한 분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분의 아내는 건청인으로서 농아 교회에 시무하는 목사님이십니다. 아내 목사님이 저와 그분 사이에서 수어 통역으로 그분의 질문을 들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시각장애인을 보고 예수님에게 장애의 원인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부모나 본인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고 대답하시는데, 도대체 우리 장애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고 계시다는 것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솔직히 난감했습니다. 비장애인끼리 하는 대화라면 거침없이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상대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는 수화로 질문하고 그의 아내가 통역했습니다. 몇 마디 시도하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제가 꼭 그에 대한 답을 책으로 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겨우 책 두 권을 펴낸 애송이 작가가 호기롭게 대답했습니다. 그때부터 '거룩한 부담'을 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책은 학술적인 논문이 아닙니다. 격식을 구비하고 신학의 마당에 내놓는 책도 아닙니다.
성도의 삶의 자리 혹은 비기독교인과 섞여 살아가는 세상에 내놓는 책입니다. 장애인도 능히 읽고 수긍할 수 있는 책으로 펴내야 합니다.
이후 네 권의 책을 더 내면서 그 질문과 대답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그 숙제를 해낼 수 있을 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병철의 하나님> 서문과 추천사에서 건강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24가지 질문 중 17가지까지 집필하고,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암으로 사망했는데 나도 암 진단을 받았으니, 비로소 이 책을 쓸 자격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건강을 잘 챙기시기를 기도합니다. 장시간 동안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황의찬 목사는
한국도로공사에서 28년간 근속하던 중 하나님의 '콜링'을 받았다. 50세에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 진학했고, 졸업 후 전주에서 온고을교회를 개척했다.
목회하면서 동 대학원에서 신학 박사(Th.D.)가 되었고,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펴낸 후 '책 쓰는 목사'가 되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 『밧세바의 미투』, 『아담은 빅뱅을 알고 있었다』 (이상 CLC), 『붕어빵』 (밀알서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