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의 소논문 "포스트 코비드 시대, 사역의 변화에 따른 교회 예배와 음악"을 연재합니다. 오늘의 예배 음악을 진단하고 포스트 코비드 시대에 교회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늘날 교회 예배에 주는 도전들
4) 현대 교회 예배에서의 찬양
초대 시내산 예배에서의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드린 예배와 찬양, 그리고 홍해를 건너서 드린 미리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찬양을 드렸는지 그 방법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함과 즉흥성을 갖고 아주 뜨겁게 찬양드렸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높이 찬양하며 축복하는 가사가 있었던 사실을 볼 수 있다.
즉, 여호와께 경배하고 (출 24:1) 소고를 잡고 춤추며 찬양했던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높고 영화로우심과 행하신 일에 대한 기사를 찬양하는 광경을 성경을 통해서 보며 (출애굽기15:20-21) 그 단서를 찾게 된다.
이와 같은 찬양의 모습은 구약에서 언급한 최초의 회중 찬양으로써 오늘날 현대 교회의 예배에서 찬양이 나가야 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단서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 내용을 소재로 삼아 오늘날 현대 교회 찬양의 현실을 진단하고, 예배 찬양의 바른 방법을 두가지로 제시하여 찬양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과 즉흥성 있는 찬양
공식적인 회중 찬양의 모체가 되는 미리암과 백성들이 드린 찬양, 그리고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드린 찬양속에서 볼 수 있는것은 무엇을 꾸미려 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코로나 시대에 예배음악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예배로 인해 예배가 영상으로 대체 되면서 많은 예배음악은 찬양인들이 드린 음악을 미디어의 힘을 빌어 새롭게 재 정비된 영상음악으로 바뀌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 속에서 찬양을 드리는 이들의 마음 자세와,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먼저, 찬양을 드리는 찬양자들은 순수하고 즉흥성이 있는 찬양을 드리기 보다 영상과 소리에서 나타날 Post Production에 대한 의식을 갖고 인위적인 음악을 만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찬양자들의 신앙 고백과, 음악성과는 별도로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미디어 엔지니어들의 능력과 재량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재 생산된 찬양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예배에서 찬양을 드리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 예배에 많이 사용되어오는 버추얼 콰이어(Virtual Choir) 또는 찬양팀들이 벤드 앙상블과 함께 찬양드린 영상을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요즘의 미디어 기술은 급속도로 크게 발달하여 원래 연주된 것을 가지고 얼마든지 원하는 소리로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또한 연주자의 틀린 음정과 박자까지 수정해서 바로 맞추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기막힌 기술을 지닌 소프트웨어들을 가지고 영상작업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 찬양의 많은 부분은 당연히 본연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채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찬양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원래 의도를 많이 벗어난 조작(Manipulation) 된 찬양이 나올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찬양의 본질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최상의 섬김으로써 그 안에 마음을 다한 섬김과 사랑의 표현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은 내게 주어진 최상의 것으로 꾸밈이나 가식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려야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찬양하리이다"(시138:1), 너희의 마음(Kardia: 심장)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양하며(엡5:19후반). 여기서 마음(심장)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 내부의 중심인 양심, 감정, 충동, 애정, 혹은 욕망이 자리하는 곳을 말한다.
이에 미드웨스트 대학교 교회음악과 김대권 교수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작용하는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을 향한 찬양만이 가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것을 교훈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구약의 역사 가운데 교회음악의 꽃을 절정으로 피웠던 시기는 다윗의 계보를 이어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였던 솔로몬 왕정 시대 였다. 이때는 대규모의 기악 합주와 성가대가 매 번 성전 예배때 찬양을 드리면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게 채워지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했던 것을 성경이 이야기 한다.(대하 5;12-13)
또한 레위인들은 매일 성전에 모여 시편을 찬양하며 찬양의 삶이 일상화 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대하8:14) 이처럼 하나님을 크게 송축하며 경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을 높이는 음악으로 바꾸었고,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나를 말하는 음악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비록 풍성한 음악과 세련된 양식으로 표현된 것이라도 그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내가 되어질 때는 하나님의 단호한 책망이 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는 소리를 들어보자.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7:6) 이 말씀은 입술의 고백과 마음이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호세야 선지자는 "나는 번제보다 하나님을 원하신다."(호6:6) 라고 말한다. 선지자들의 이런 고백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랑하는 찬양이 아닌 종교적 유흥을 즐기는 찬양을 불렀던 것 같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참다 못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경고 하는 모습을 본다.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암5:23)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송은 하나님께로 부터 철지히 외면당하고 하나님의 분노를 샀던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예배에서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힘을 당연히 빌릴수 밖에 없다. 여기에 나를 드러내려 함이 아닌 내 안에 계신 삼위 하나님을 순수한 열정으로 드러내려 하는 그 모습, 그 소리를 담아 드려야 한다.
영상을 담당하는 앤지니어들은 찬양인들이 드린 원본의 의도를 최대한 반영해 있는 그대로의 준비된 모습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찬양을 드리는 자들에게는 마음과 입이 하나가 되어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되어 그분을 높이는 진정한 고백이 되는 찬양이 되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종교개혁가 쯔빙글리의 말을 가슴으로 담아보자. "입으로 시편가를 부른다 할지라도 입과 마음이 같이 가는지 주의하여야 한다. 기도 할때도 입과 마음이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노래는 어떻겠느냐?". 회중들의 입장에서도 예배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을 참된 예배자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찬양을 바라보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찬양속에서 내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기억하고 동감하며 하나님을 송축하는 자세인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