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교회마다 부흥시킨 해리 리더 목사
해리 리더 목사 (Dr. Harry L. Reeder III)의 목회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그를 여러 차례 만났는데, 미국 장로교회 총회에서나, 신학교에서나 항상 중후한 신뢰감을 주는 분이었다. 현재 앨라바마 주, 버밍햄에 있는 브라이어우두 장로교회 (Briarwood Presbyterian Church in Birmingham, Alabama)의 담임목사로 이십여 년을 섬기고 있다. 해리 리더는 동부 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재학 중에 아내 신디를 만난 후 1969년에 결혼했다. 자신의 공부는 접어두고, 화학을 전공한 아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움을 주었다. 다시 자신의 대학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학교에 돌아간 후, 목회에 소명을 받아서 커번넌트 대학에 편입하여 역사와 성경을 전공하고 1974년에 졸업했다. 학교 근처의 챠타누가 지역에서 독립교회를 6년 동안 섬겼고, 테네시 템플 신학교에서 틈틈이 공부도 했다. 그 후 신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마치기 위해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플로리다 신학센터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그가 공부하면서 2년 반 동안 섬긴 파인랜드 장로교회 (Pinelands Presbyterian Church)는 50 명에서 400명으로 성장했다. 그의 사역의 핵심은 그의 설교와 성경공부, 소규모 제자훈련 등으로 결속시켰다는 점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83년 2월, 38명으로 시작된 "크라이스트 커번넌트 장로교회"에 초대 설립 목회자로 청빙을 받았는데, 7년 후에는 3천 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 다양한 교회 양육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작동하였다. 노인층을 위해서 버스를 매일 운행하는 복지사역에도 힘썼다. 또한 이때부터 리더 목사는 기독교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10분 설교"와 1분 삽입 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집중적으로 기독교 남자 신자들의 지도력 발전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자신의 성공사례를 토대로 교회의 재활성화를 위한 사역을 개발해서, "잔불이 불꽃처럼 타오르도록" (Embers to a Flame)이라는 세미나를 매년 국내외적으로 개최했다. 이런 내용으로 리폼드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가을에 앨라배마 버밍햄에 있는 "브리이어우드 장로교회" (Briarwood Presbyterian Church)에 청빙을 받아서 지금까지 담임 목회자로 섬기고 있고, 자신의 교회에 세워진 버밍햄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미국 남부 정통 보수주의 신학의 맥을 잇고 있는 이 교회는 미국 장로교회 (P.C.A.) 교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0년 초대 설립자 프랭크 바커 목사 (Frank M. Barker, Jr.)의 위대한 지도력으로 초대형 교회로 성장하였다. 바커 목사는 사십여 년 목회하면서 대형교회로 성장하도록 하였고, 그의 인품과 성실함으로 지역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던 목회자였다. 대형교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신학교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필자는 버밍햄 신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목회역량을 강화해서 선교하려는 목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지금은 약 4천 1백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는데, 회중들 가운데는 한국인들의 소그룹이 있고, 일본인들 모임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제자화 훈련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그 핵심 가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중점 사항의 첫 단어를 모으면, 쉽게 기억하기 위해서 "웰" (좋은,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토요일 아침 일찍 기도 모임이 있고, 교회에서 다양한 양육 강좌가 개설된다. 저명한 기독교인 교수들의 교양강좌가 많이 개설된다.
이 교회의 목표는 "건강한 (W.E.L.L.)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i) 예배 (Worship):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ii) 전도 (Evangelism): 우리의 사역은 세계를 향해서 전파하는 것이다. iii) 사랑 (Love): 우리의 사역은 서로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iv) 배움 (Learning): 우리의 사역은 자신들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맨해튼의 개척자, 티모티 켈러 목사
팀 켈러는 금세기 최고의 통찰력을 제시하는 설교자로 정평이 났으며, 국제적으로 널리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줄로 안다. 필자는 가장 어려운 대도시 개척 목회를 감당한 최고의 개척자가 뉴욕 리디머 (Redeemer) 장로교회의 티모티 켈러 목사라고 확신한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설교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미국장로교회 (P.C.A.) 교단 본부에서 맨해튼으로 옮겨가서 개척교회를 하라는 권유를 받아들였다. 뉴욕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서 이미 두 명이나 거절했었던 사역을 별로 목회경험도 없는 그가 맡게 되었던 것이다. 1989년에 시작한 개척교회는 5천여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로 성장했으며, 그의 퇴임과 함께 네 개의 맨해튼 내의 지역 교회들 (리디머 이스트, 리미더 웨스트, 리디머 다운타운, 리디머 링컨스퀘어)로 활발한 특성화를 이루고 있다.
신학대학원의 실천신학 교수로 있었기에, 그가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의 박식하면서도 변증적인 설교자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정신을 정확히 꿰뚤어서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했기에, 팀 켈러 목사의 저서는 최고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거의 대부분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목회한 지 20년이 되던 해에 2008년에 출판한 『하나님에 대한 이유들』(Reason for God)이라는 책은, 뉴욕 타임즈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논픽션 서적으로는 7번째의 판매순위를 올리고 있다. 전 세계의 목회자들이 그의 설교를 모방하였다가 구설 수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한인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부임 설교에서부터 줄곧 표절 시비가 발생하였는데, 결국 그 교회 목회자가 사임을 해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다. 팀 켈러의 목회와 설교를 연구한 저서들과 박사학위 논문들도 여러 편 나올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켈러 목사는 뉴욕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전문인들에게 영감과 도전을 주었다. '뉴요커'들은 증권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예술인들이 많은데, 잘못된 사상들과 문화의 영향 아래서 왜곡된 사상을 갖고 있다. 교회의 중심을 이루는 성도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혼자서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다. 그래서 리디머 교회에서는 결혼 준비 교육과정이 매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안-아메리칸이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데, 주로 중국계와 한국계 2세들, 3세들이다.
2017년 7월 현장 목회에서 은퇴한 후, 전 세계에 다니면서 젊은 목회자들의 멘토로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2020년 6월부터 췌장암 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 뉴욕 리디머 교회의 예배는 성경적인 예배와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놀라운 감동을 준다. 매 주일 뉴욕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 축복을 기원하는 부분들이 감동을 주고 있는바, 직장에서의 성공, 돈, 섹스, 권력들은 우상일 뿐이며, 결코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강력하게 깨우치는 메시지를 주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대상들로 만족을 누리려 하는 자들은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 뉴욕과 주변 도시 개척 사역을 위해서 40여개의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으며, 젊은 목회자들을 훈련시켜서 현장에 나가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 중에 내쉬빌에 있는 스캇 사울스(Scott Sauls)와 호주 시드니의 스티브 청(Steve Chong) 등이 활발하게 사역을 하고 있다. 켈러의 설교와 저서들은 정통 개혁신앙과 복음을 변증하는 내용들이다. 켈러는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민감하게 비평하지만, 어느 당에도 소속하지 않고 잘못을 지적한다.
팀 켈러의 사역에서 핵심을 이루는 강조점들은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하는 복음의 교리들이다. 그는 인간의 전적부패, 값없이 주시는 은혜, 대속적 속죄를 강조하고 있다. 켈러는 전통적인 종교를 탈피하라고 촉구한다. 규칙과 규정에 매이고, 예식을 통해서 개인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거나 공고를 세우고자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하나님도 없고, 구원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비종교인"이 되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접근방법은 "복음 중심"이다. 뉴욕의 현대 문화 속에서 담겨있는 반기독교 정서, 서구 유럽 사상에 깊이 스며있는 회의론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그의 대표적인 가르침은 "복음"이다: 우리들 속을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하며 결함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항상 이것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감히 소망을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복음중심의 이해가 대표적으로 담겨있는 책이 탕자의 비유를 해석한 『탕자의 하나님: 기독교 신앙의 핵심 재발견』(The Prodigal God)이다. 켈러가 가장 영향을 받은 분은 영국 옥스퍼드의 영문학 교수 루이스 (C.S. Lewis), 코넬이우스 반틸, 존 프레임, 존 스토트, 알빈 플랜팅가 등이다.
켈러는 과거에 뉴욕에서 일어났던 사회복음운동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들은 진보적인 자유파 정치에 대한 강조를 하면서도 교회에서 중심적으로 강조하는 죄의 심각성과 죄성에 대한 교리적 가르침을 약화시켰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가르친 바를 더욱더 실천해야 하는데,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와 관심,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음을 지적한다. 뉴욕에서 가장 민감한 성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면서 성경에 위배된다고 가르친다. 낙태에 있어서도, 예외적인 조항들을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