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길고 지루했으며 때로는 두려웠다. "우리가 펜데믹을 극복했나? 뉴 노멀에 적응하고 있나?"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아직 펜데믹을 통과하지 않았다. 변이되고 있는 이 기괴한 바이러스는 앞으로 수년 동안 우리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부터 얻은 교훈들은 또 다른 형태의 펜데믹이 찾아올 때 도움이 될 것이다.
펜데믹 기간 우리는 격리와 대피소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엌과 거실, 침실 등 좁은 공간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간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격리에 따른 지루함과 영적 무기력, 좌절감 등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필자와 같이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격리는 매우 큰 제약이었다. 코로나19는 장애인들을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한 계층으로 분류했고 나는 더욱 고립됐다. 이 기간 우리는 매우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며 날카로운 말과 냉담한 시선으로 감정에 멍이 들기도 했다.
필자는 우리가 펜데믹에서 살아남으려면 고립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깨어나 하나님의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라는 야고보서 1장 12절 말씀을 상기했다.
남편과 나는 격리의 시간 동안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기도와 성경 읽기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편 51편을 외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했다. 펜데믹 기간 동안 히브리서 12장 1절 말씀처럼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로써 달리고자 했으나, 결승선은 더 멀어져 갔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경주가 시작됐다. 급증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우울증의 안개가 우리를 덮었다. 간병인을 줄이고 나를 더 돌봐야 했던 남편의 부담도 커졌다.
외부 활동이 멈춰지고 계속 집에 머물면서 필자는 고통을 통해 나의 길을 노래하던 습관을 떠올렸다. 그리고 노래에서 고통을 마주할 해답을 발견했다. 필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통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는 골로새서 3장이나 에베소서 5장의 명령과 같이 우리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계절일 때 노래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노래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할 것임을 확신한다.
고통은 우리를 암울하게 만들고 후회와 의심, 두려움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과 믿음의 찬양은 확신 가운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게 해준다. 시편 59 편의 말씀처럼 주는 나의 힘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이시니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를 것이다.
노래에는 진정한 치료가 있다.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찬송을 불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어두운 계절이 계속 될 때, 우리라고 왜 그들처럼 노래할 수 없겠는가? COVID‑19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던 모든 것이 감사할 조건이었음을 알게 됐다. 안전한 집과 가까운 동네 식품점, 물을 내리는 화장실과 마음껏 사용하는 온수 등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편리함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가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어두운 시간에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다. 우리 또한 매일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다. 비록 우리의 현실과 미래가 우리를 낙담케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신다. 그것이 우리가 믿음 안에서 노래할 이유이다.
펜데믹의 끝을 향해 여행하는 동안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짊어지며 갈보리의 언덕을 향해 걸어가자.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자. 우리의 찬양과 노래는 모든 펜데믹을 헤치고 나갈 아름다운 멜로디다.
*본지는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출간한 어라이즈 투게더(Arise together)를 18회에 걸쳐 번역 게재해 드립니다. 미국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외침을 통해 교회가 본질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붙들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