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대망의 신축년 새해가 동터옵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해 하나님의 은총이 기독일보 독자들과 온누리에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위기 가운데 신축년 새해를 맞이합니다. 팬데믹은 어느 공동체보다도 교회에 큰 도전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요구합니다. 팬데믹이 가져온 혼란과 상실은 2020년 한해 우리 일상 곳곳에 크고 작은 내상을 입혔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효능 좋은 백신 개발로 이제껏 기세등등했던 팬데믹을 이겨내고 우리 내면과 사회 곳곳에 드리운 불안 공포를 몰아내야겠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라이프스타일, 소비, 가치관, 욕망, 영성에 큰 변화가 일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팬데믹의 영향이 돌이킬 수 없는 인류사적 재앙이 될지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의 기회가 될지 현재로서는 불확실합니다.
팬데믹이 초래한 뉴노멀(New Normal) 시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도전에 맞서 교회는 어떤 새로운 모습이 아닌 원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소유지향적 기관이 아닌, 세속적 가치질서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대안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물리적 공간에서만이 아닌, 디지털화된 플랫폼에서도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신앙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교회로 거듭날 수 있는가를 화두 삼아 교회의 본질 회복에 더욱 힘쓸 수 있어야 합니다.
개교회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연대와 결속으로 이웃 교회를 돌아볼뿐더러 우리 사회를 섬기고 베푸는 데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로써 팬데믹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긴 상흔을 치유하는 교계로 힘차게 도약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과학기술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 인간 영혼 안에 남겨두신 여백은 하나님만이 메우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여백은 복음으로 채우라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입니다.
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위기로 여기기보다 신앙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유사 복음과 병든 신학을 바로 잡고 교회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실행할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회 변두리로부터 지구 생태계까지, 하나님의 샬롬과 구원이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는 탐욕바이러스는 퇴치되야 합니다. 자동판매기에서 하루치의 희망을 뽑아 마시듯,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끝장낼 기세로 끝없는 탐욕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탐욕이 낳은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지금의 팬데믹입니다. 팬데믹은 발생할 것이 틀림없으나 우리가 무시해 온 '검은 코끼리'(black elephant)에 비유됩니다. 이미 커다란 코끼리가 눈앞에 보이는 데에도 못 본 척하며 행동을 미루는 경향을 뜻합니다. 그 이유가 관성이든 부정이든 두려움이든 코끼리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낼 때까지 모른 척한다는 것인데 기후변화나 팬데믹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검은 코끼리의 실체는 다름 아닌 우리 안에 똬리를 튼 탐욕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인류가 나서서 함께 퇴치해야 할 궁극의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닌 탐욕입니다. 팬데믹은 탐욕에 인생이 저당 잡혀 미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인류가 이 탐욕을 제어하는 영성을 제대로 기르지 않는 한 지구촌 곳곳의 생태파괴는 화마, 수마, 병마가 되어 우리의 다음 세대를 심각하게 할퀼 것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공멸로 귀결될 끔찍한 재앙을 물려주어서야 되겠습니까.
이 탐욕에 맞서 하나님이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라고 세우신 기관이 교회입니다. 팬데믹 상황 속 교회가 더욱 눈길을 돌려야 할 곳은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최전선, 즉 치유와 소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소외와 재난 현장입니다. 교회는 공공기관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 소외되고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눔과 돌봄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교회가 지닌 공적 책임이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교회의 공공성 회복은 현대 교회가 당면한 우선 과제입니다.
하나님의 환대를 이미 경험하였기에 이웃에게도 환대를 베푸는 이들이 성도입니다. 코로나19로 재편되고 있는 뉴노멀 시대는 사회 곳곳에서 공공성을 실천하는 교회로의 전환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구원은 한 인간 영혼의 구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영역은 물론 우주적 차원의 구원까지 아우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공동체입니다. 첫 창조가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면, 새 창조는 성령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낡은 것으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vetere)입니다. 새 창조는 이미 우리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되며(고후 5:17), 온 세상에 복음이 확산되어 하나님 나라의 평화가 온전히 임할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새 창조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최종 목표로써, 죄악으로 하나님 형상이 어그러진 인간과 재난으로 무너지고 황폐한 세상을 하나님이 자신의 뜻과 질서로 복원하시는 운동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 희망은 세상 질서와 제도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과 사회와 우주의 궁극적 희망은 혼돈에서 질서를, 죽음에서 생명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새해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으로 희망을 노래하며 주어진 시간을 아름답게 기경하는 기독일보 독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팬데믹으로 허허롭게 된 세상을 회복과 생명의 복음으로, 영성의 알짬으로 충만하게 하는 교회들로 인해 희망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상명 박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