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가의 수도이자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은 원래 '평화가 흐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샬롬, 이슬람, 무슬림 등 근동지역 언어에서 'S L M'의 발음으로 이루어진 단어들은 '평화'란 의미를 지니고 있고, 'yeru'는 히브리어로 '물과 같이 흐르다, 겨누다, 가리키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 두 단어의 합성어인 Jerusalem은 흔히 '평화의 터전', '화평의 기초'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도시에 정작 평화가 강물처럼 흘렀던 적은 거의 없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윗, 솔로몬 임금 당시 이스라엘이 통일왕국을 이루고 역사상 최전성기를 맞아 잠시 번성하고 평온했을 때를 제외하면 지난 3000여년의 기간동안 예루살렘은 전쟁과 이민족의 지배, 불의와 부패, 기근과 파괴 등 온갖 부정적인 요소들로 뒤덮여 '진정한 평화'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고통과 절망만이 깃든 땅이었다. 50차례 이상이나 외국 군대에 의해 포위, 공격당했으며, AD 70년에는 로마군이 도시의 성을 부수고 도시를 점령해버려 수많은 유대인들이 조국을 떠나 2000년 동안 전 세계를 방황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또한, 1947년 현재의 이스라엘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예루살렘은 유대인, 아랍인, 아르메니아인 등 다수의 인종, 민족 거주 지역들로 나뉘어져 있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이 도시를 자신들의 성지로 삼는 등 정치, 종교적으로도 조각조각 분열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다양한 민족, 종교들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항상 긴장감이 감돌며 크고 작은 전쟁과 테러들로 인해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등 세계에서 가장 소란스럽고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 어둠과 절망의 땅 예루살렘을 '평화의 터전'이라고 명하신 것일까?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과 하나님이 제시하는 평강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중국 고전에 나오는 요, 순 임금이 다스리던 '태평성대'처럼 사회가 전쟁 없이 평온하고 안정적이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조화와 화해가 이루어지고, 먹을 것, 입을 것들이 풍족해 모든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풍요와 번영을 누리는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하지만, 하늘의 평화, 예수님이 추구했던 진정한 'shalom'의 평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항상 전쟁과 테러의 공포 가운데 살아도,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해도, 각종 자연재해와 기근으로 궁핍과 부족함 속에 헤매어도, 이 모든 고통과 악조건들을 초월해 언제나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께서 언젠가 우리를 이 환난으로부터 구원해내신다는 소망을 가진 채 오직 그분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며 만족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 즉, 하박국서 3:17-19의 말씀처럼 부족함 가운데 자족할 수 있고, 두려움 가운데 담대할 수 있고, 슬픔 가운데 기뻐할 수 있고, 상실 가운데 베풀 수 있고,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샬롬'의 은총을 입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다.
또한 샬롬의 평화는 자신을 낮추어 남을 높이고 섬길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화목제로 자신을 희생시킴으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듯이, 이 땅의 평화도 나 자신을 희생하고 내려놓음으로써 이루어진다. Pax Romana, Pax Americana의 개념처럼 상대를 힘으로 억누르고 굴복시켜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부자연스런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에 맞게 각기 다른 구성원들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며 아름다운 조화와 상생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바로 '샬롬'이며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에이레네(Eirene)'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에이레네 역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궁극적인 선을 이루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고 타협하며 노력해나가는, 수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얻어지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이 '평화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비록 수많은 민족, 종교들로 분열되어 있고 이들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들로 항상 소란스럽고 위험하지만,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고 존중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이루라고 하나님이 이 도시에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 같다. 결코 이 지역에서 이민족들과 이슬람교도들을 모두 내몰고 유대인들만의 국가를 이루는 것이 아닌, 비록 무수한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끝없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정하고 통합하는 노력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평화'가 아닐까 한다.
이제 한 해가 지나고 또 다른 한 해가 오고 있다. 계속되는 팬데믹 현상과 정치, 경제상의 혼란과 어려움으로 새해 역시 밝고 희망참보다는 어둡고 부정적인 전망들이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샬롬의 평화, 진정한 예루살렘의 의미를 항상 마음속에 새긴 채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홍보/영성문화사역 담당)
이준수 목사는 2009년 5월 시카고 부근에 위치한 트리니티신학대학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목회학 석사 프로그램을 마치고 남침례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현재 남가주밀알선교단에서 장애인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출생 직후 심한 황달로 평생 뇌성마비 장애를 앓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고로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는 등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와 UCLA 역사학과 대학원에서 유럽역사 전공으로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클레어몬트 신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또한 지난 2000년에는 귀한 자매도 만나 결혼하여 현재 쌍둥이 남매를 둔 가장으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