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1)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고후 5:6-7)
이제 곧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이 시간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삶이 좀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해를 준비합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여느 해보다 더욱 더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클 겁니다.
근데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요. 여러분들의 삶이 그렇게 바라듯이 점점 좋아지고 계십니까? 자세히 돌아보면 분명 이 세상은 편리해졌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더 힘겨워 하는 듯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드리고 우리의 삶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지막 해를 보낸다면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요?
송구영신의 뜻이 뭔가요? 그 뜻은 오래된 것은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믿는자들은 어떻게 송구영신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보내야 할 오래 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썩어질 육체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맞이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믿는 자들은 육체의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것들을 맞이하는 참된 송구 영신 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는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1절의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네, '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반드시 일어날 가장 중요한 사건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탄생"과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탄생"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해마다 기억하며 축하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잘 기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탄생"은 이미 일어나서 우리가 여기에 이미 존재한 과거의 사건이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없지만, "죽음"은 우리가 반드시 맞이해야 할 사건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을 날마다 기억하고 준비하고 계십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 우리 믿는 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죽음"을 기억하고 한해동안 그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적인 겉사람이 아닌 우리의 영혼의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다음 해에 우리의 소원한 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기원하는 시간이 되면 안됩니다. 바울은 그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1절 마지막입니다. 그 죽음 뒤에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로 알고 있다고 합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믿고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고 있습니까? 그 죽음 뒤에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 확실한 소망을 날마다 붙들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성령님께 그 소망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고 계십니까? 성령께서 이 땅에서 가장 확실한 소망인 천국의 소망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두번째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6절에서 7절입니다. 6절의 시작을 "그러므로"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이 원인이기 때문에 뒤의 내용이 결과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의 내용이 뭔가요? 우리에게 확실한 천국이 있다는 겁니다. 천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담대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우리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체를 입고 살아갈 때에는 온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유일한 삶 하나를 가르쳐 줍니다. 7절입니다. 그것은 바로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행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 믿는 자는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아가면 절대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고후 4장 16절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한번 주위를 둘러 보십시요. 뭐가 보이십니까? 여러분, 이렇게 보이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면 안됩니다. 목사가 보이는 성도들을 위해 살아가면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보이는 성도들을 섬겨야 합니다. 성도들이 보이는 목사를 위해 교회의 일을 하면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교회를 섬기셔야 합니다. 부모가 보이는 자녀를 위해 살아가면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렇게 보이는 집을 위해 살아가면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살아가야 합니다.
왜일까요? 이렇게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산다면 그 행위도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영원하지 않는 행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지금 죽음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하십시요!! 그것이 바로 믿는 자의 바른 송구 영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