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집회 인도차 충청도 아산에 와서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집사람이 자기가 적립한 마일리지로 무료 비행기 표를 마련해 줘서 공짜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좌석을 예약을 했는데 이코노미실(일반실) 중 제일 앞자리를 얻는 행운(?)도 덤으로 받았습니다. 아실 테지만 일반실 좌석중 맨 앞자리는 일반석의 일등석과 같아서 얻기가 쉽지 않은데 왕복 구간을 모두 맨 앞자리로 예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비행기를 타고 지정 좌석에 앉았는데 얼마 후 얼핏 봐도 80세는 족히 넘으신 미국 할머니 한분이 딸의 부축을 받아 옆 좌석에 와서 앉으셨는데, 60세쯤으로 보이는 따님이 자기 어머니가 자리에 앉는 것을 얼마나 세심하게 챙겨주는지 옆에서 보기에도 참 정겨워 보였습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앉는 것을 다 보살펴 준 딸이 “자기가 가까이에 앉아 갈 테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자기 어머니에게 하는데 마치 나이 어린 딸아이를 챙기는 엄마처럼 여러 차례 다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녀간의 대화를 듣는 순간 제 마음에, “아, 이 딸이 내가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자기 어머니와 같은 좌석에 앉아서 가지를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자리를 바꿔주면 모녀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할머니가 좀 더 안심하고 여행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따님에게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고맙지만 괜찮다”는 겁니다. 아마 자기 좌석이 내 좌석보다 좋지 않아서 나한테 미안해서 사양하는가 싶어서 다시 한번 “나는 괜찮으니까 당신이 여기에 앉아서 어머니와 같이 가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다시 “괜찮다”고 사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괜찮겠나”고 다시 물었더니 “정말 괜찮다”고 하기에 내심 어렵사리 얻은 내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서 더 권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딸이 다시 한번 자기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뿔싸! 그 딸의 자리는 이코노미석이 아니라 비즈니스석이었습니다. 자기는 비즈니스석 제일 마지막 칸 자리에 앉고 어머니는 이코노미석 제일 첫 줄에 앉게 한 것이었습니다. 비즈니스석에 앉아가는 사람에게 이코노미석에 앉은 주제에 자리를 바꾸자고 했으니.... 순간 제 마음이 좀 씁쓸하고 멋쩍었습니다.

비즈니스석에 앉은 딸은 간간히 어머니 좌석으로 와서 안부를 물으면서 이것저것을 챙기는데 딸의 말투만 들으면 이건 딸이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 어린 딸에게 하는 듯이 들렸습니다. 거의 명령조였습니다. 잠이 안온다고 하는데도 억지로라도 눈을 감고 잠을 자라든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화장실을 가자고 한다든가, 시간이 되었으니 약을 먹으라든가 등등 ... 할머니는 이와 같은 딸의 명령에 당신의 의견을 말하다가도 어머니의 의견에 상관없이 밀어붙이는 딸에게 마치 잘 훈련된 애견처럼 그저 따르기만 하십니다.

식사 시간이 되자 딸은 어머니에게 제공된 음식을 보더니 자기 어머니에게 “이런 불량 음식은 먹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음식을 식탁에서 치우더니 자기 가방에서 잼을 바른 크랙커 두 조각을 어머니에게 주면서 “이걸 먹으라”고 하니 그 할머니는 다시 아무 말 없이 딸이 주는 크랙커를 잡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식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간에 제공된 스낵이나, 두 번째 식사도 모두, “이런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치워버리고는 크랙커를 두 조각씩 대신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따위 음식을 먹으라고 주느냐”고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자기는 비즈니스석에 제공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비즈니스석에 편안하게 앉아 매끼 식사는 물론 스낵이며 음료수까지 좋은 음식을 모두 다 빼놓지 않고 먹어 가면서, 이코노미석에 앉아 가는 어머니에게는 가끔씩 와서 불편하지 않냐, 불편해도 좀 참으라고 하고, 제공되는 음식은 모두 다 불량음식이니 먹지 말라고 하고는 워싱톤에서 도쿄까지 오는 14시간동안 크랙커 6조각만 주는 딸의 모습을 옆에서 보는 제 마음도 많이 불편하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은 비즈니석에 앉아 가면서 이코노미석에 앉은 어머니를 돌보며 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얼핏 우리가 남을 돕는 모습이 바로 이 딸의 모습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살다가 가끔씩 그런 편안한 삶의 자리를 떠나 우리보다 어려운 형편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가서 보고, 딱한 마음으로 동정하고,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는 심정으로 얼마간의 자선을 베풀고는 다시 우리 자리로 돌아와 편안하게 쉬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