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바울의 아테네 설교에는 풍성한 자료가 담겨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페쉬는 아테네의 바울 설교를 세계 문학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구절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아테네 설교는 문화적 강을 넘어 복음을 적합하게 전한 사례입니다. 아테네 설교는 이런저런 이유로 관심의 대상입니다.

헬레니즘의 심장부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설교는 인문학적으로 좋은 자료입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신약학 교수였던 마틴 디벨리우스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입니다. 디벨리우스는 사도바울이 아테네에서 전한 설교를 가장 탁월한 헬라적인 설교로 인정하며 사도행전의 정점(Climax)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디벨리우스는 아테네의 사역은 결신자도 적고 실패한 설교 혹은 실패한 선교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가 회심합니다. 그의 직책은 아테네의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유세비우스 교회사에 따르면 디오누시오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됩니다. 또 유세비우스는 디오누시오의 여러 행적을 전합니다. 요컨대 디오누시오는 초대교회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아테네에서 바울 선교는 큰 결실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바울의 아테네 사역이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테네의 경험이 다른 사역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아테네를 닮은 고린도 선교에 큰 결실을 남깁니다. 고린도에서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습니다(행18:5).

나아가 그는 아시아의 아테네였던 에베소 사역에서도 크게 성공합니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초기에 아시아에 가기를 사모했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마케도니아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한 바울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를 지나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에베소 선교 활동에서 바울은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성령강림을 체험하고, 지식인들을 위한 두란노사역도 활발합니다. 에베소 사역에 힘을 얻은 바울은 아시아 지역을 선교(행19:10, 26)합니다. 이 아시아 지역 선교로 계시록의 7교회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교회들을 개척한 것으로 유추합니다.

에베소와 소아시아 지역을 선교한 장면을 소개하는 행19:26을 주목합니다. "(전략)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들이 아니라 (후략)"라는 구절은 아테네 철학자들과 시민들을 설득할 때 사용했던 말씀(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4b)과 흡사합니다. 이는 당대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에게서 빌려왔거나 세네카의 말을 활용한 것 입니다.

 세네카
(Photo : wikipedia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 ~ 65년 4월)는 고대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이다.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플라톤, 퀴닉 학파, 에피쿠로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혼과 육체의 구별을 강조하면서, "현자는 삶을 갖는 동안만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삶이 필요한 동안만 산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인간은 육체에 구속되어 있지만 올바른 이성에 의해 인간답게 살아가며, 죽음으로써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철학이란 바로 이와 같은 선(善)을 추구하는 처세의 학문이다"고 주장하였다. 

학자들은 바울의 아테네 설교에는 세네카의 말이 다섯 번 인용되었다고 말합니다. 세네카는 황제 철학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투스와 더불어 스토아를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세네카는 네로 스승이었지만 네로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철학자들에게 스토아학파의 사상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이 철학을 만날 때 취할 태도의 모범이 됩니다. 행 17장 25절에서 바울은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라며 하나님을 논증합니다. 이 말은 세네카의 말(신이 인간들을 섬기려 하기 때문에 신은 섬기는 자를 원하지 않는다.)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26절도 세네카의 말과 거의 같다고 알려집니다. 바울은 신의 존재를 인정했던 스토아학파의 논리를 따라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특히 당시 네로 황제의 멘토로 유명세를 탔던 세네카의 신론(神論)을 인용하며 참신이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순식간에 바울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그들이 가진 신의 개념으로 하나님을 알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합니다. 바울의 설교가 주는 강한 설득력이 느껴집니다.

세네카는 뛰어난 문필가입니다. 세네카가 남긴 위로의 글("마르키아 여사에게 보내는 위로," "폴뤼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등)들은 그가 탁월한 문필가였음을 알려줍니다. 아울러 세네카는 까다로운 스토아철학을 쉬운 언어로 남겼습니다. 그의 "행복한 삶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등은 스토아 철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작품들이고 더불어 그는 당대 유명인사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네카는 아테네 아레오파고스에 모인 철학자들과 시민들에게 익숙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당대에 가장 유명한 세네카의 명문장들을 인용하면서 청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설득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자부심에 충일했던 아테네 철학자들과 시민들이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특별한 반론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신들보다 세네카를 더 잘 아는 바울의 논리에 감복하였을 것 같습니다.

몇몇 신약신학자들은 헬라철학을 사용한 바울을 연구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바울은 모든 서신서에서 헬라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합니다. 헬라의 수사학, 문학 그리고 철학으로 구비한 인문학자 바울은 효과적인 복음의 전달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