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헤브라이즘(Hebraism)은 구약을 바탕으로 형성된 히브리 정신을 말합니다.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앙과 문화적 전통을 포괄하는 문화입니다. 조금 더 풀어 보면 헤브라이즘은 유일신사상을 신봉하는 신앙 중심적이고 내세지향적인 도덕과 윤리위에 세워진 문화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를 의미합니다. '헬라'는 원래 반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스인들은 반도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들을 헬렌(Hellen)으로 불렀습니다. 헬레니즘은 좁게는 그리스 절정기에 유럽과 중동 그리고 인도지역을 정복하던 시대의 문화를 의미입니다. 그런데 광의의 헬라이즘은 헬라문화를 전수받았던 로마시대의 문화도 포함시킵니다. 로마시대의 기득권층과 로마시내에서는 코이네 헬라어가 널리 통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서양의 고전을 통한 인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문화권을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은 충돌과 조화의 과정을 겪습니다. 이 두 문화권의 갈등과 융합을 통해 서양 문화가 발전해 왔습니다. 신약성경은 헤브라이즘 문화의 정수이지만 신약 성경에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종종 등장합니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들 중에 헬레니즘의 산물이 많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주요도시들이 헬레니즘 문화의 산물입니다.
예컨대 데가볼리는 알렉산더 대제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만든 도시입니다. 데가볼리는 열 개(데카)의 도시(폴리스)를 의미합니다. 이 곳은 실제로 알렉산더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고, BC 63년 폼페이우스 장군에 협력하면서 자치와 면세의 특권을 누렸던 도시연맹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귀신들린 여인이 있었던 거라사도 데카폴리스 중에 하나입니다. 마가복음 5장 21에서 예수님은 데카폴리스에서 복음을 전하신 것을 밝힙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디베랴는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념하는 도시입니다. 헤롯 대제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막6장의 헤롯)가 로마의 새로운 황제 티베리우스를 위하여 갈릴리 호수 서편에 건설한 도시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위하여 유대인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충돌입니다. 로마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디베랴는 헬레니즘을 대표합니다. 그 헬레니즘의 문화가 깃든 디베랴에서 선포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은 헤브라이즘의 정수입니다.
이렇게 논리가 전개되면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신앙)적이고 헬레니즘은 세속(비기독교)적이고 사탄의 학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의 선교사역이나 교부 신학 시대를 거치면서 헬레니즘이 신학의 도구로 봉사합니다. 특히 그리스 로마의 철학적 사유와 논리가 기독교 신학의 논리적 힘줄이 되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교육받은 다소(Tarsus)는 당시 헬레니즘을 꽃피운 핵심도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헬라시대 3대 교육도시는 아테네(스승이 많았던 도시), 알렉산드리아(도서관등 교육 시절이 좋았던 도시), 그리고 다소(중산층들의 교육열이 높았던 도시)입니다. 바울은 다소에서 양질의 헬레니즘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런 교육과 경험을 가진 바울이 헬레니즘 문화권 도시들을 찾아서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들을 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들이나 교회가 세워졌던 소아시아의 도시들은 당시 헬레니즘 문화에 젖어 있었던 도시들이었습니다. 바울은 헬라문화를 복음전도의 통로로 활용했습니다. 또 그는 복음에 헬라문화를 옷 입혀서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이고 유능한 전도자였습니다. 바울의 선교가 효과적일 수 있었던 도시들은 도시화 문화를 지향했던 헬레니즘의 산물이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레오바고 언덕. 아레오파고스(그리스어: Άρειος Πάγος)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 기구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고대 그리스어: Ἄρειος Πάγος)라는 말은 '아레스 신의 바위'라는 의미이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과 같은 역할을 했으며, 의도적 살인에 대한 재판 법정으로서의 기능도 했다. ©wikipedia
신약 성경에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가장 강렬하게 충돌하는 장면은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아테네 선교장면입니다.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바고(Areopagus)광장에서 설교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아테네는 헬레니즘의 심장입니다. 당시 헤브라이즘의 핵심인물인 바울이 아테네의 심장 아레오바고에 서서 설교합니다. 아테네 걸에 서 있던 어느 신상의 새겨진 말(알지 못하는 신에게:To an Unknown God)을 언급하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바울은 이 짧은 설교에서 헬레니즘 사상 특히 아테네 사람들의 생각과 언어를 수 차례 인용합니다. 당시 웅변술과 수사학에 능했던 사도바울은 청중 분석에 능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할 청중인 아테네 시민들이 듣고 말하는 용어와 경구, 문화를 활용해서 자신의 헤브라이즘을 전합니다. 요컨대 사도바울은 철저하게 헬레니즘적인 접근으로 헤브라이즘의 결론인 하나님과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성경이 헤브라이즘의 기둥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소홀히 하는 인문학은 없습니다. 인문학은 성경의 진리를 밝혀 줍니다. 인문학의 대가 중에 무신론자는 거의 없습니다. 종교 개혁자, 탁월한 신학자, 영향력 있는 기독교 작가들은 한결같이 인문학에 정통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때 더 분명하고 더욱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