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계와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만남도 관계이고, 사업도 관계이고, 정치도 관계이고, 가족도 관계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활동력에는 모두 관계로 인하여 이어지고 관계로 인하여 성립이 되어 진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많은 관계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가 있어야 하고, 아버지 하나님과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인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부르는 여호와란 이름에는 언약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란 약속이 있는 관계일 때 쓰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란 관계가 있을 때, 여호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는 여호와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여호와 대신 아버지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관계를 떠나서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구약의 여호와가 이해가 안 되면, 아버지로 바꾸어 불러도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와 아버지가 중요한가? 그것은 크리스천의 모든 힘은 여호와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는 의도 좋은 관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자녀로 살아도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회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 구하란 말은? 동네 아저씨로 찾지 말라는 뜻이고, 동네 아줌마로 찾지 말라는 뜻이고. 고아와 같이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선지의 표현대로, 도움을 구하러 애급으로 가지 말고 아버지께 가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께 구하면 관계에서 나오는 힘을 주시고. 좋은 것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는 생선을 달라하면 뱀 주지 않고.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 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크리스천의 모습은? 적은 수요, 나그네요, 약자의 모습이지만,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끊어버리기도 하시지만 그것은 우리로 오직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지하게 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약하고 부족해도 낙심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한데서 내 능력이 온전해지고. 부족해야 내 능력이 머물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애급의 바로왕의 힘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힘의 관계지만, 아버지의 자녀들은 철저하게 의지하니 전능하신 아버지가 오셔서 철저히 애급을 응징해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녀의 능력은 아버지! 하며 부르짖는 힘에서 나오기 때문 입니다.
[김병규 칼럼]능력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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