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교회 친교실에 앉아 주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코스모스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에헤~ 꽃잎 다 떨어지겠네..." 바람이 그리 센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여리여리한 코스모스인지라 걱정이 되었습니다. 꽃망울을 터뜨린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영화 '달콤한 인생'의 인트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과 함께 이런 나레이션으로 시작됩니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니 마음 뿐이다.'" 바람은 그냥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나무가 흔들릴 만큼 불고 있지만, 때가 되면 잠잠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흔들리고 있는 네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만났던 가장 큰 바람은,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막내가 아직 pre-school을 다니고 있었을 때였으니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인사불성이 된 아내를 업고 당시 올림피아종합병원 ER로 뛰어들어 갔지만, 아내의 왼쪽 뇌는 이미 2/3 이상이 죽어 있었습니다. 실핏줄이 터져서 1주일 동안이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이튿날 시애틀에 있는 스위디쉬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올림피아에서 수술을 받을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앰뷸런스를 좇아 가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대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대들고 있을 때 마음 속에서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네 아내를 위해서 내 아들을 십자가에 주었어..." 십자가가 기억났습니다. 더 이상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제 아내를 사랑하시는 지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퇴원 후의 삶은 더 녹녹치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챙겨서 학교에 보내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아내와 함께 먹고, 아내를 씻기고, 또 점심 식사를 준비해서 아내와 같이 먹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또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먹고, 설거지를 한 후에 가족 기도회를 하고, 아이들을 씻겨서 재우고, 통증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아내를 10-20분 정도 마사지를 하고...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면 혼자서 월마트에 가곤 했습니다. 살 것이 없어도 그냥 갔습니다. 아마도 혼자 있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정말 큰 바람이었습니다. 힘든 중에도 교회까지 개척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내가 수술 후유증으로 쓰러지고 씨저를 할 때면 정말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런 저희를 지켜 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사방이 막혀있는 것같은 절망의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열려있었고, 그 길로 나아가 기도할 때면 하나님은 제게 영광스런 당신의 나라를 보여주시며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세상은 다 지나가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입니다.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나무나 바람 때문이 아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주께 피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를 의지하며 이 바람을 이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