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박사님이 본지에 '조직신학 에세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게재합니다. 정성욱 박사님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M.Div.)를, 영국 옥스퍼드 대학 신학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 교수 지도 하에 조직신학 박사학위(D.Phil.)를 받았습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신학대학원(Denver Seminary) 조직신학 교수이자 아시아 사역처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주에 구원과 선행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발표했다. 그 기고문을 읽은 일부 독자들이 칭의의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요청을 해왔다.
사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칭의에 대해서 엄청난 혼란과 오해에 빠져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이자 복음주의 개신교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는 칭의교리가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것을 결정하는 교리" (justificatio est 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justification is the article by which the church stands and falls.")라고 선포한 바 있다. 루터에 따르면 교회가 칭의교리에 대해서 오해하는 순간 그 교회는 무너진 것이다. 그렇기에 칭의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아래와 같이 칭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많은 지체들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란다.
1. 칭의의 의미는 "의롭다고 칭한다" 또는 "의롭다고 선포하고, 인정한다" 이다.
2. 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의 죄를 완전히 사하시고, 죄인을 의인이라고 선언하시는 영단번의 사건이다. 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의로운 자라고 선언 (declare)하시고 인쳐주시는 (seal) 사건이다. 그리고 이 칭의의 사건은 영단번 (once and for all)의 사건이다. 따라서 한번 이 사건이 일어나면 영원한 효력이 있다. 그리고 칭의의 사건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해주신다 (complete forgiveness). 물론 여기서 사해주심이란 죄의 현존 (presence of sin)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죄책 (guilt)을 제거하고, 죄에 대한 정죄와 심판 (condemnation and judgment)이 사라지며, 죄에 대한 형벌 (penalty/punishment)이 제거되는 것이다. 칭의의 사건 후에도 죄는 그대로 그리스도인 안에 현존한다.
3. 칭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God's action). 칭의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칭의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칭의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격없는, 공로없는 죄인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우리는 오직 은혜에 의하여 (sola gratia) 오직 믿음을 통하여 (sola fide) 칭의된다.
4. 칭의는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고 신뢰할 때 그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뤄지는 사건이다. 칭의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죄인의 회개가 필요하다. 죄인은 자신의 죄와 죄된 삶에 대해서 슬퍼하는 마음으로 주님앞에 나아와 자신이 정죄와 심판을 받고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한다. 그러면 그 때 죄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며, 그 연합에 기초해서 칭의의 선언이 이뤄진다. 따라서 칭의의 사건에서 믿음도 인간의 의나 공로가 될 수 없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로 전달되는 통로와 채널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이다.
5.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거룩한 교환 (holy exchange)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는 죄인에게 전가 (imputation)되고, 죄인의 죄는 그리스도에게 전가된다. 죄인이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할 때 그리스도에게 있는 모든 긍정적이고 복된 것은 우리의 것이되며,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부정적이고 저주스러운 것은 예수님의 것이 된다. 즉 예수님의 의, 거룩, 성결, 지혜, 능력, 영광은 우리의 것이되며, 우리의 죄와 비참과 저주와 정죄와 형벌은 주님의 것이 된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이미 정리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러 주셨다.
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시고 완성하셨다. 위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하시고, 아래로 당신의 이웃인 우리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심으로 율법의 의를 성취하셨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대표해서 행하신 것이다. 동시에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화목제물, 속죄제물로 드리시고, 피를 흘리셨으며, 우리 대신 심판과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러주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죄인은 그리스도의 절대적으로 완전한 의의 옷을 입게 되며, 하나님은 그 죄인을 완전한 의인이라고 선언하시고 인치신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가 입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보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 죄의 현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7. 칭의의 사건을 통해서 죄인은 죄책에서 완전히 해방되며, 자신의 죄에 대한 정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 그리고 그가 지불해야할 대가인 심판과 지옥의 형벌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 그러므로 칭의는 자유와 해방의 사건이다.
8. 칭의의 사건을 통해서 믿는 자의 구원이 확정된다. 즉 모든 칭의된 자는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성화의 유무와 관계가 없다. 물론 칭의된 대부분의 사람이 성화의 과정을 거친다. 왜냐하면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은 반드시 자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칭의된 사람들 중의 일부는 성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있다. 십가가 상에서 주님을 영접한 강도가 그 실례이다. 또한 임종시에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성화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성화가 아니라 칭의로 구원이 확정된다는 것이다. 성화는 이미 확정된 구원의 열매요, 결과이지, 구원의 조건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선행으로 당신이 구원받았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말은 심각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확정된다. 선행은 그리스도인 안에 계신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열매이다.
9. 칭의의 사건이 있더라도 죄인의 죄된 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죄된 본성은 그리스도인이 영화될 때 사라진다.
10. 칭의의 사건이 일어날 때 여러가지 복스러운 사건들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그것은 회심과 중생과 연합과 양자와 성령세례/내주/인치심과 확정적 성화 (definitive sanctification)등이다. 확정적 성화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거룩한 존재로 구별하시는 사건이다. 확정적 성화의 사건이 있은 후에 비로소 점진적이고 실재적인 성화 (progressive and practical sanctification)의 과정이 진행된다.
11. 칭의와 확정적 성화는 죄인 밖에서 일어나는 객관적인 사건이다. 반면에 점진적/실재적 성화는 죄인 안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혹은 경험적인 변화의 과정이다.
12. 칭의는 취소될 수 없다. 따라서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수십년의 신앙생활을 하고도 나중에 끝내 주님을 거부하고, 불신앙의 자리로 떨어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는 애초부터 참된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